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돈바스 진입 하루 만에 맞불 작전에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강수에 맞서 금융 제재와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등 권력층에 대한 표적 제재로 러시아를 압박하는 한편 최악의 전면전에도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맹국과의 연대 속에 경제 제재에 신속히 나섬으로써 서방 측 의도를 떠보려는 푸틴에게 틈을 보이지 않으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은 24일 예정됐던 러시아와의 외교 장관 회담도 철회했다.
하지만 러시아도 물러서지 않았다. 당장 푸틴 대통령은 벨라루스 등 접경지에 병력을 증강했다. 당분간 미국 등 서방 측과 러시아 간 대립이 강 대 강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22일(현지 시간)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invasion)이 시작됐고 이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했다. 1차로 러시아 국책은행인 대외경제은행(VEB)과 방위산업 지원 특수은행 PSB 및 42개 자회사에 대한 제재와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연방보안국(FSB) 국장 등 푸틴 대통령의 측근 등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돈줄 죄기와 함께 러시아 최고위직에 대한 제재로 내부 균열을 도모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특히 바이든은 이번 조치를 ‘1차 제재’라고 언급하며 러시아의 추가 도발 시 러시아 국영은행 중 하나인 VTB 등에 대한 제재에 나설 것이라고 공언했다. 아예 다음 제재 대상을 지목하며 러시아를 압박한 것이다. 러시아의 사이버 테러 가능성도 제기하며 대비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컨설팅사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이번 제재로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이 1% 정도 위축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다만 이번 제재 효과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에 수개월이 걸리는 데다 미국이 제재한 은행의 경우 러시아가 이미 다 제재를 예상했던 곳”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유럽도 제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긴급회의를 열어 로시야은행, 프롬스뱌지은행, 크림반도 흑해은행 등 러시아 주요 은행과 신흥 재벌 등의 역내 자산 동결과 거래 금지 등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영국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영업하는 은행 5곳과 푸틴 대통령 측근 기업인들에 대해 자산을 동결하고 거래를 금지하기로 했다. 앞서 독일은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사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일본도 23일 러시아 정부와 정부 기관이 발행하거나 보증하는 신규 채권의 일본 내 발행·유통을 금지해 서방의 제재에 동참했다.
미국은 전면전에도 대비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발트해와 폴란드에 보병 800명과 F-35 전투기 8대, AH-64 아파치 공격 헬기 32대를 이동시킨다고 밝혔다. 이날 러시아 상원도 해외에 군대 파견 등을 승인했다. 이와 관련해 푸틴 대통령이 “당장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내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교란술로 보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도 “모든 조짐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계획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러시아도 심리전을 펴며 다음 스텝을 준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미국의 제재는 예상된 제재”라며 “푸틴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제재 연설 중계를 보지도 않았다”고 응수했다. 이날 미국 위성 업체 맥사는 전날 촬영된 위성사진에서 우크라이나 북쪽 접경지인 벨라루스 남부 지역에 군용차량 100여 대와 막사 수십 개가 새로 배치된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협상의 불씨가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현재 예정된 회담은 없지만 양측 모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외교의 문을 완전히 닫아놓지 않았다”며 외교적 해결을 촉구했다. 푸틴 대통령도 “최선의 해법은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 야망을 포기하고 중립국으로 남는 것”이라면서 병력 파병은 이후에 조성되는 구체적 상황에 달렸다고 말하며 여지를 남겼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