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1960년대는 같이 출근해 쉬고 밥 먹고 퇴근해야 계획대로 공장이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기업과 근로자에게) 자율과 책임을 부여한 현재도 우리는 1960년대식 타율로 움직이는 ‘공장법’에 갇혀 있습니다.”(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
노동법은 지난 1953년 제정된 후 큰 틀에서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공장시대 노동법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반면 산업계에서는 디지털 시대의 흐름에 맞춰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노동법을 산업 변화에 맞게 고치자는 전문가와 산업계의 주장이 기업을 편드는 일이라며 제대로 손대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노동 개혁을 위해 일명 ‘양대 지침’을 만든 공무원들이 적폐로 불리는 상황은 이 같은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노동법은 ‘9 투(to) 6’ 근로가 사라진 현재의 노동시장과 노동자를 아우르지 못하는 구시대의 유물법이 돼버렸다. 경영계는 해석이 좁고 규율에만 갇힌 노동법으로 직원별 능력, 경영 환경 등 다양한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전체 취업자 수의 10%를 목전에 둔 플랫폼 노동자는 보호받을 기본법조차 없다.
◇플랫폼 종사자 220만 명…일상화된 플랫폼 노동=노동법이 얼마나 낡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근로기준법 제2조 1항이다. 과거 공장시대처럼 한 사업장에서 근로의 대가를 임금으로 받는 형태라면 문제가 없는 조항이다. 그러나 한 사업장에서 계약을 맺지 않고 일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배달 라이더 같은 플랫폼 노동자가 등장하면서 근기법 제2조 1항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느냐가 문제로 떠올랐다.
정부는 특고에 고용보험 가입을 확대 적용하는 보완 대책을 마련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까지 겹치면서 지난해 국내 플랫폼 종사자는 220만 명까지 급증했다. 전체 근로자의 8.5% 수준이다. 청소, 수리, 돌봄 노동, 교육, 과외 등 실생활 곳곳에서 플랫폼 노동이 일상화됐다. 노동계는 근로기준법에서 플랫폼 종사자를 인정하자고 주장한다. 정부는 플랫폼 종사자 보호 지원에 관한 법을 별도로 만드는 방식을 제안한 상태다.
◇법원 판결에 좌지우지되는 해고·파업·임금·근로시간=산업계에서 노동법은 조문보다 법원 판례를 봐야 한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노동법이 현재 노동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근로자에 대한 공정한 보상과 성과를 위해 필요한 평가 중 하나는 노동 유연성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해고는 금기시되고 있다. 근로기준법 24조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해고가 가능하다’는 조항은 유명무실하다. 사용자가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모호한 전제가 깔려 있다. 이 때문에 사용자의 노력이 충분한지를 놓고 해고자가 나올 때마다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노조법 43조의 쟁의행위 시 대체근로 금지 조항도 마찬가지다. 불법 파업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있는데 경영계는 노사 관계가 틀어지면 마땅한 대응책이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며 볼멘소리다.
현행 노동법의 가장 큰 문제는 근로시간의 경직성이다. 근로기준법 50조는 한 주의 근로시간이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하루 근로시간도 8시간을 넘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주 40시간에 연장 근로 12시간을 더한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지난해 7월부터 5~49인 기업도 확대 적용)되자 경직된 근로시간의 한계가 더 부각됐다. 전체 기업의 90%가 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시·일·월·연 단위로 근무시간 시스템을 세분화하기 어렵다. 이런 우려는 뿌리기업뿐 아니라 연구개발 분야와 소프트웨어 같은 미래 산업에서도 터져나온다. 박 원장은 “혁신을 중시한다면 기업과 근로자에게 근로시간의 주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 유연성 해법은=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선거기간 발언과 공약집을 보면 주 52시간 근로제, 임금 체계, 플랫폼 노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것으로 전망된다. 경영계는 윤 당선인의 친(親)기업 행보에 기대를 걸고 있다. 다만 윤 당선인의 노동 유연성에 대한 해법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9월 후보자 신분으로 한국노총을 찾아 “유럽의 노동 유연성은 자유로운 해고를 전제로 한다”며 “아직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영계는 윤 당선인이 반노동 정서가 강하다는 당시 평가를 의식한 발언이라고 평가했지만 의외라는 반응도 많다.
노동 유연성은 유럽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한 정책이다.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고통 분담으로 경제 위기를 돌파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사회안전망이 강화되기 전까지 노동 유연성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사회안전망이 어느 수준까지 강화돼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