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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혁신의 시대는 승자독식…새 먹거리 발굴 위해 고등교육 투자 확대 절실”

스탠퍼드대·UC버클리, 데이터 사이언스 등에 대대적 투자

"대학도 '수월성' 필요…세계적 대학 육성 위해 지원해야"

"반도체는 '빵과 버터'…스타트업 키워서 새 먹거리 발굴'

"실리콘밸리에 서울대 캠퍼스 조성해 글로벌 인재 양성"

"교수·학생 창업 지원 확대하고 등록금 등 규제 풀어야"

"대학 입시 자율성 부여…초중등 교육과정도 손질해야"


서울대는 지난해 3월 출범한 인공지능(AI)·빅데이터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을 설립했다. 석사 40명, 박사 15명으로 출발한 대학원은 관악캠퍼스 연구공원 내 옛 LG연구동에 둥지를 틀었다. 산학협력단과 함께 쓰는 건물은 작고 아담했다.

지난 달 28일 대학원 내 라운지에서 만난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동영상 클립을 틀었다. 미국 스탠퍼드대가 3억달러를 들여 짓고 있는 ‘데이터 사이언스 & 컴퓨테이션 컴플렉스’를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스탠퍼드대는 차 원장이 박사학위를 받은 모교다. 그는 “스탠퍼드대는 지난해 발전기금 수익금이 120억달러에 달하는데 그 돈으로 저런 건물도 짓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는 것”이라며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이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 투자 확대를 역설하고 있다.




차 원장은 인터뷰 내내 ‘전략적 변곡점’을 강조하며 대학이 혁신 생태계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고등교육에 대한 과감한 재정 투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혁신의 세계는 승자독식인데 결국 누가 파괴적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인재와 기업을 양성하는가에 달려 있다”면서 “우리나라가 반도체 이후의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려면 글로벌 시장에서 날카로운 무기를 가지고 뚫고 나갈 수 있는 인재를 키우고 무대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대학들이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스탠퍼드뿐 아니라 UC버클리도 앞서 나가고 있다. UC버클리는 10여년 전 무어재단과 슬론 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신입생이 입학하자마자 선택과목으로 데이터 사이언스를 가르쳤다. 첫해에 50명을 대상으로 파이선과 데이터 분석, 통계, 기계학습을 가르쳤는데 맛만 조금 보여준 것이다. 이 과목이 인기가 있어 지금은 매년 3000명 이상이 수강한다. 수강생이 느는데 강의실이 없어 한 독지가가 재작년에 2억5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UC버클리에서 창업해서 성공한 기업 중에 데이터브릭스가 있다. 가치가 100조원에 달하는 이 빅데이터 기업의 창업자 중 3명이 각각 2500만 달러를 UC버클리에 기부했다. 이 돈으로 건물도 짓고 교수를 유치한다. UC버클리는 UC샌프란시스코와 협력해 데이터 기반의 정밀의료 공동 박사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한 익명의 독지가가 5000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내건 조건이 1억 달러 추가 모금이었다. 투자 규모가 우리와는 비교가 안된다."

-서울대의 상황은 어떤가.

“서울대가 매년 정부로부터 받는 국고보조금이 5200억 원 정도다. 교수 급여 등 경상비로 쓰이는 돈이다. 발전기금이 5000억 원이 조금 넘는다고 하는데 대부분 정기 예금이고 주식이나 펀드로 굴리는 돈은 절반도 안된다.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예산이 연간 6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혁신의 세계도 승자독식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에 둘러쌓여 있는 우리나라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파괴적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인재와 기업이 계속 나와야 한다. 중국의 속국이 되지 않으려면 서방세계가 포기할 수 없는 인적자원과 산업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1~2개 대학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워야 한다. 그 예산이 얼마나 들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반도체와 자동차, 2차전지 등 분야에서는 경쟁력이 있지 않는가.

"톱 리딩하는, 새로운 것을 뚫고 나가는 맨파워가 세계를 이끈다. 우리나라에 파괴적 혁신자가 얼마냐 있는지 의문이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날카로운 무기를 가지고 뚫고 나가는 분야가 몇 개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패스트 팔로어’로는 웬만큼 했지만 지금이 중국이나 베트남이 거의 쫒아왔다. 반도체도 앞으로 치고 나가는 분야가 아니다. 워낙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분야이다보니 우리가 앞서 영토를 확보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서울대만 해도 아직 상당수 연구가 산업화 시대의 대기업 공급 사슬에 들어가 있다. 그것은 ‘빵과 버터’다. 필요한 분야지만 빵과 버터만 먹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다음 먹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AI와 빅데이터뿐 아니라 바이오와 헬스케어도 애매한 수준이다. 로컬 마켓 수준에 그치고 있다. 현재 한국 산업은 레거시(전통)와 ‘빵과 버터’ 수준의 산업이다. 결국 스타트업을 키워야 한다. 내가 줄곧 기업가치 100조원의 스타트업 10개를 육성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서울대 교수들이 탁월성을 지닌 연구를 해야 하고 이를 스타트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은 네트워크가 없으니 실리콘밸리 같은 곳에 회사를 설립해 자본과 인력을 글로벌화해야 한다."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의 석박사 연구공간. 개방형으로 조성해 자유로운 토론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했다.


-카이스트가 뉴욕에 해외 캠퍼스 조성하기로 했다.

“내가 먼저 지난해부터 미국 실리콘밸리에 서울대 해외 캠퍼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획재정부에도 예산 만들어달라고 했다. 이 정도 경제규모에서 서울대가 해외에 캠퍼스를 못가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리스트와 만나 피칭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기술만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스스로 못하면 미국에 가서 배워야 한다.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해를 못한다. 본인이 직접 부딪혀 보고 또 실패해봐야 한다. 발상의 전환을 위한 창문을 열어줘야 한다. 이공대 학생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인문사회계열 학생도 실리콘밸리에서 프로젝트와 피칭을 해봐야 한다. 세상이 어떤지를 경험하고 나면 스스로 변할 것이다."



-서울대 해외 캠퍼스는 실현 가능성이 있나.

"가야할 방향을 설정하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본부는 리스크와 재원 문제를 검토하느라 속도가 느릴 것이다. 해외에서 성공한 지인이 내 생각에 공감해서 펀드를 만들고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가능하다고 본다. 시점을 봐서 해외 캠퍼스 설립을 추진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날카로운 경쟁력을 가지고 뚫고 나갈 수 있는 인재를 키우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 주려면 돈이 필요하다. 서울대는 재정적 자유가 절실하다. 서울대가 경쟁해야 하는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예일대, MIT 등은 발전기금만 40조~50조원에 달한다. 하버드대는 대학 운영 자금의 3분의 1이 발전기금에서 나온다. 서울대가 재정적 자유를 가지려면 10조원 정도의 발전기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싱가포르국립대가 그 정도 가지고 있다. 재정의 자유가 생기면 자율이 생긴다. 서울대가 몇 개 분야에서는 앞서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대학이 되려면 재정적 자유가 필수다.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차 원장은 2000년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바탕으로 ‘TIM(Transact in Memory)’이라는 교내 벤처를 창업했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후 독일계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SAP에 매각했다. SAP의 현재 주력 서비스인 'HANA(하나)' 플랫폼은 차 원장이 개발한 기술을 토대로 하고 있다.

-대학이 혁신 생태계의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창업이 보다 활성화돼야 하지 않는가.

“미국은 스탠퍼드와 UC버클리, 하버드와 MIT 등 몇 개 대학, 시애틀과 실리콘밸리, 보스턴 등 몇 개 지역이 혁신 생태계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교수들이 자기가 연구한 것을 가지고 나가서 회사 설립하면 1~2년 뒤에는 투자한 사람들이 기업을 끌고 나간다. 그러면 다시 대학으로 돌아와서 새로운 문제를 다른 학생들과 함께 풀면 그게 또 회사가 된다. 미국에서는 ‘연쇄 창업 교수’가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국내 대학 교수가 창업하면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가야 하고 본인이 회사를 운영하려면 대학을 그만둬야 한다. 창업한 교수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계약에서 자유롭게 풀어주고, 강의 부담을 줄여주는 대신 그 비율만큼 신규 교원을 뽑도록 했으면 한다. 회사에서 받는 급여만큼 남은 급여를 가지고 교수를 더 뽑는 것이다. 40명이 창업해서 50%만 강의하면 50%, 즉 20명의 교수를 더 뽑을 수 있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이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교육분야에 대한 정부 규제 완화를 강조하고 있다.


-정원 문제와 교수 겸직 제한 등 대학에 대한 정부 규제가 너무 심하다는 지적이 많다.

“대학 입시만 해도 그렇다. 교육부가 모든 대학의 입시 룰을 왜 정하나. 새로운 것을 치고 나가는 것이 중요한 시대에 학생 선발 기준도 다변화·다양화돼야 한다. 인재를 뽑는 것도 자율에 맡겨서 다양한 형태의 학생 선발이 있어야 한다. 모든 대학이 똑같은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 것은 투자로 치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것이다. 초임 교수 시절의 학생들은 성적은 나쁘더라도 뭘 시켜도 도전적이었는데 지금 학생들은 정형화된 문제는 엄청나게 잘 풀고 성적도 좋지만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고장난 로봇 같다. 입시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입시 규제를 풀어야 한다.”

-대학에 입시 자율성을 부여하면 공정성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주장이 있다.

“학교가 불공정한 입시를 시행해 망하고 싶으면 망하게 놔두면 되지 그걸 교육부가 일일이 간섭할 필요가 없다. 기여입학제 같은 문제는 사회적 논의를 해야 하지만 학생 선발 방식은 대학이 알아서 하도록 해야 한다. 등록금 문제도 그렇다. 미국은 등록금을 올리더라도 발전기금으로 장학금을 지급해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대학이 자율과 자유, 민주주의라는 틀 안에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각 대학마다 자율적으로 학생을 뽑으면 학생들이 맞춰서 선택할 것으로 본다. 대통령 당선인이 이러한 큰 그림을 알고 있다고 해서 안심이 되지만 지금부터는 디테일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입시 문제를 비롯해 고등교육과 초중등교육은 뗄레야 뗄 수 없다. 초중등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대학이 어떤 인재를 뽑겠다고 선언하면 초중등교육이 따라가면 된다. 미래 세대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리텔링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많이 읽고 쓰는 훈련을 해야 한다. 학교에서 그런 기회가 별로 없는 것이 아쉽다. 역사교육도 제대로 해야 한다. 역사는 시공간 정보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단편적인 데이터를 모아서 손으로 붙여서 주관적으로 해석했는데 지금의 역사는 많은 곳에서 데이터가 디지털 형태로 모이고 있다. 앞으로 역사는 데이터 기반으로 가르치고 분석하도록 해야 한다. 역사와 데이터 기반의 객관적 사고와 추론능력 그리고 스토리로 풀어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능력이 교육의 기본이다. 사회과목을 데이터 기반으로 바꾸고, 교과목을 데이터 기반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들을 시범적으로 키워보자고 교육부에 제안했다.”

차 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우리나라가 빵과 버터만 먹다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상태까지 갈건지 아니면 과거 역사 보다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 작지만 톱 클래스의 국가가 되느냐의 전환점에 서 있다”면서 “과거의 룰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전략적 변곡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 개혁과 과학기술 투자”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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