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존 1.25%인 기준금리를 1.50%로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회사채를 중심으로 한 기업의 자금 조달에 빨간불이 켜졌다. 회사채 조달 금리가 높아지자 대기업들은 만기가 돌아온 채권을 현금을 총동원해 갚는 한편 은행 대출과 기업어음(CP) 등 대체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고금리 단기 자금에 기댈 수밖에 없는 저신용 기업들은 유동성 위기가 우려된다.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달 자금 조달을 계획하던 SK머티리얼즈·한화·한화솔루션(009830)·동원시스템즈(014820)·SK렌터카·아주산업·두산중공업(034020) 등 대부분의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을 연기하거나 철회했다. 시장 조달 금리가 예년 대비 크게 높아졌고 투자자 모집마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달 국고채 금리가 크게 오르면서 채권 중에서도 위험 자산인 회사채 투자 심리가 더욱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 심리를 보여주는 회사채 금리 스프레드(국채와의 금리 차)는 13일 68.1bp(1bp=0.01%포인트)까지 치솟아 코로나19 사태로 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던 2년 전 70bp 안팎 수준을 위협하고 있다. 매년 회사채 시장을 찾아 조(兆) 단위 자금을 확보해가던 LG화학과 SK하이닉스(000660)·현대오일뱅크 등도 올해는 자취를 감췄다. 현대중공업지주(1600억 원)와 신세계(1500억 원), LG CNS(400억 원)는 이달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를 현금 상환하기로 했다. 신용도가 우수한 기업들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달 30년 만기 자금 2000억 원을 모집하려던 한국전력(AAA)의 한전채가 700억 원의 미매각이 발생한 데 이어 SK텔레콤(AAA) 역시 최대 800억 원 규모로 증액 발행하려던 20년물 장기채에 600억 원의 수요를 받는 데 그쳤다. 그간 1% 후반~2% 중반이던 발행 금리도 3.8% 안팎으로 올랐다.
한 대형 증권사의 자금 조달 담당자는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수단도 변하는 분위기”라며 “시장금리에 민감한 자본시장 특성상 변동성이 더 크기 때문에 회사채 대신 은행 대출이나 단기 자금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9년부터 많은 기업들을 회사채 시장에 불러들였던 CD 금리(은행의 기업대출 기준 금리)와 국고채 금리(회사채 발행 기준금리) 역전 현상은 2020년 상반기 정상화된 후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지난달 2년여 만에 1%포인트를 넘어선 데 이어 13일 기준 1.5%를 기록 중이다. 더 이상 기업들이 시장에서 저금리 자금을 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은행 대출이 어려운 저신용 기업들의 상황은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공모주 우선 배정 혜택을 노린 하이일드펀드들이 저신용 회사채를 잇따라 인수해갔지만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올해 기업공개(IPO)에 나서는 회사들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달 회사채를 발행한 JTBC(BBB)는 600억 원 규모 회사채를 1.5년 만기 5.5% 조건으로 겨우 발행했다. 2년 연속 적자에 자본잠식 상태로 은행 대출은커녕 자산관리공사(캠코)가 보증하는 담보부사채 지원도 어려운 상황인 만큼 고금리 단기 자금이라도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은 기존에 비축한 현금이 많지만 그때그때 운전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어떻게든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며 “과거 금융위기 때도 만기가 짧은 단기성 차입으로 갈아타다가 신용 경색이 발생하면 유동성 위기에 빠지는 기업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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