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아 삼성액티브자산운용 대표는 국내 자산 운용 업계의 상징적 인물이다. 여성 펀드매니저라는 이름조차 낯설던 시절을 건너온 ‘1세대 여성’ 매니저였고 ‘중소형 FOCUS 펀드’라는 발군의 투자 상품을 탄생시킨 ‘스타’ 펀드매니저였다. 특히 2012년 국내 1위 사업자인 삼성자산운용의 주식 운용을 총괄하는 첫 여성 본부장(CIO)으로 발탁된 후로는 행보 하나하나가 관심을 받는 거물급 매니저가 됐다. 그런 그가 올해 2월 마침내, 펀드매니저 출신으로는 드물게, 직장인으로서 닿을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인 대표이사에 올랐다. 삼성액티브자산운용은 삼성자산운용의 자회사로 국내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공모·사모펀드 운용을 전담하고 있다. 그의 이런 성취를 가장 기뻐한 사람은 바로 동료와 선후배 펀드매니저들이었다.
“굉장히 많은 축하 메시지를 받았는데, 한마디 한마디에서 느껴지는 게 단순한 축하라기보다는 어떤 기대감 같은 것들이었어요. 그래서 대표가 됐다는 기쁨보다는 부담감이 먼저 다가왔죠. ‘내가 무얼 하기는 해야 하겠구나’라는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민 대표가 기쁨보다 부담감을 더 크게 느낀 것은 ‘자본시장의 꽃’으로 불리던 펀드매니저의 입지가 예전 같지 못한 상황이 원인일 테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개인투자자가 급격히 늘어나며 증권 업계 전반이 역사적 호황을 누렸지만 직접투자 열풍과 상장지수펀드(ETF)의 인기 속에서 간접투자인 펀드 시장은 쪼그라든 상태다.
“우리나라 자산 운용 시장의 역사는 길게 봐도 20여 년에 불과하다 보니 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성장해서 올라간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기간 동안 주식시장에 얼마나 많은 변동성이 있었나요. 살아남은 사람이 많지도 않았고, 특히나 최근 많이들 운용 업계를 떠나셨죠. 자산운용업을 잘 아는 누군가가 중심을 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매니저들 전반에 퍼져 있었는데, 그 역할을 제가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웃음).”
모두의 기대가 큰 만큼 부담도 크지만 이왕이면 잘해내고 싶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도, 회사의 대표로서도. 그는 “‘시장을 잘 아는 사람이 매니지먼트를 하니 괜찮다’는 반응이 나오도록 잘하고 싶다”며 “고객들에게도 더 좋은 수익률을 보여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뼛속까지 문과생에서 스타 펀드매니저까지=펀드매니저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이 대단한 민 대표지만 처음부터 운용을 꿈꾸지는 않았다. 아니, 투자를 업으로 삼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민 대표는 “나름 공부를 못한 편은 아니었지만 수학은 정말 못했던, 완전한 문과생”으로 자신을 기억했다. 뼛속까지 문과였던 그가 투자의 매력에 빠진 것은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서다.
“그룹 공채로 LG에 들어갔는데 LG화재(현 KB손해보험) 투자팀으로 발령이 난 거예요. 원하지도 않았고 피하고 싶을 정도였죠. 그래도 주식이 뭐고, 채권은 뭔지를 겨우 배워가고 있었는데 얼마 안 돼 외환위기(IMF)가 터졌어요.”
흑자 기업조차 부도가 나는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서 많은 기업이 대규모 구조 조정을 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LG그룹도 마찬가지. 팀의 선임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났고 회사의 포트폴리오는 어느새 막내급인 민 대표에게까지 내려왔다. 주변에 조언을 구할 사람조차 사라진 막막한 상황에서 그는 워런 버핏과 벤저민 그레이엄 등 투자 대가들의 책을 펼쳤다고 한다.
“계좌에 100곳이 넘는 회사가 있었는데 편출시킬 기업을 골라내는 게 제 역할이었어요. 정답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했고 그러면서 대가들의 방법론을 알게 된 거죠. 당시만 해도 투자라는 것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트레이딩이 전부였는데 저는 그런 투자를 전혀 모르다 보니 오히려 정석대로 ‘가치 투자’를 배운 셈이었어요. 무엇이 진짜 투자인가에 대한 개념을 스스로 정립하면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게 제가 지금까지 롱런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됐다는 생각도 드네요.”
본격적으로 뛰어든 기업 분석과 투자 업무는 무척 재밌기도 했다. 민 대표는 “지금도 좋은 회사를 방문해 유망한 비즈니스 계획 등을 듣다 보면 살아 있는, 진짜 에너지가 느껴져 너무나 즐겁다”고 한다. 이렇게 즐거운 일을 좀 더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2002년 투자가 본업인 자산 운용 업계로 왔다. 이후로는 승승장구. 2006년 삼성자산운용으로 스카우트될 때도 ‘3년은 더 다니려나’ 하며 반신반의했지만 어느 새 16년이 흘렀다.
◇힘겨운 펀드매니저의 삶…공부와 팀워크로 이겨내=물론 펀드매니저로 살아온 삶이 마냥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실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민 대표는 “내가 할 수 있는 1%의 일과 어떻게도 할 수 없는 99%의 일로 평가를 받는 것이 펀드매니저”라며 “아무리 예측을 해도 북한이 미사일 한 번 쏘거나 대통령이 한 명 바뀌면 완전히 뒤집어지는 게 시장의 속성”이라고 토로했다. 주말, 심지어 휴가지에서도 뉴스를 보고 포트폴리오를 챙겨야 하는 나날들에 육체적으로 한계를 느낀 적도 많았다. 무엇보다 투자라는 게 너무 어려웠다. 펀드매니저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저조한 수익률에서 비롯하는 법. 민 대표는 “항상 내가 투자를 못한다고 생각했기에 끊임없이 ‘내가 맞을까’를 고민했고, 더 잘하기 위해 언제나 남들을 관찰하고 또 공부했다”며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도 했다.
고된 나날들을 버티게 해준 또 다른 원동력은 동료들이다. 동료들과의 교류는 단순히 서로의 애환을 나눈다는 차원을 넘어 스트레스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해주는 열쇠이기도 했다. 이토록 어려운 투자를 잘해내기 위해서는 동료들과의 협업과 팀워크가 필수적이었다는 말이다.
“주식 투자의 관점에서 볼 때 투자를 잘한다는 것은 결국 성장 잠재력을 가진 회사를 누구보다도 빨리 발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아주 간단하죠. 하지만 이 간단한 일을 온전히 혼자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아요.”
민 대표에 따르면 진짜 성장주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첫째, 세상의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둘째, 자신의 관점에 확신을 가지고 오랫동안 요동치는 시세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최근처럼 인플레이션이 화두가 되는 상황에서 대다수는 ‘인플레이션 수혜주’를 찾겠지만 탁월한 투자자 일부는 인플레이션이 바꾸고 있는 세상의 이면을 읽고 그 이면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회사를 찾아내 장기 투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애쓴다고 누구나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혼자서는 더욱 어렵다. 민 대표는 “그들의 팀이 프로페셔널하지 않았더라면 버핏 같은 투자 구루들도 지금의 성공을 손쉽게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실제로도 혼자가 아닌 팀워크를 통해 투자에 성공한 경험이 훨씬 많다고 했다.
“어떤 투자 아이디어가 나오면 저뿐 아니라 팀원들이 모두 함께 검증하고 또 검증하고, 우리가 맞는지 다른 곳의 의견은 어떤지를 끝없이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확신이 생겨요. 우리가 맞아, 그런데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뿐이야. 이렇게 확신한 아이디어들은 결국 다 대박이 났죠.”
◇“내 삶 모든 것이 투자와 연결돼…세상의 변화에 투자하자”=선배로서 후배 펀드매니저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팀워크의 소중함’이라면 개인적으로는 ‘투자의 즐거움’을 좀 더 많은 이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제 투자 철학은 ‘세상의 변화에 투자하자’예요. 늘 세상의 변화를 관찰해야 했고 저 역시 변화해야 했으니 절대로 지루할 틈이 없었죠. 그런 태도는 제 인생에도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어요. 돌이켜보면 저의 모든 삶이 투자와 연관돼 있었던 것 같아요.”
예컨대 아이들이 즐겁게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공부 안 하느냐고 혼내기보다는 무슨 회사의 어떤 게임인지를 먼저 묻게 된다. 아이가 진로 문제로 고민할 때도 앞으로 어떤 직업의 가치가 좀 더 높아지고 어떤 직업은 조금 내려갈지, 밸류에이션을 따져보게 된다는 것이다. 민 대표는 “특히 아이들은 자신이 해야 하는 공부와 세상과의 연관 관계를 잘 모르다 보니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모를 때가 많다”며 “그 이유를 알게 된다면 아이들의 세상이 좀 더 풍요로워질 테고, 그런 공부는 학교 선생님들보다 내가 더 잘 가르쳐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해봤다”며 웃었다.
삼성액티브자산운용의 대표자로서는 고객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다양한 펀드와 액티브 ETF 상품을 자주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변화를 잘 담아낼 수 있는 상품들을 더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목표는 고객들이 좋은 수익률을 내도록 돕는 것이죠. 매일 잘할 수는 없더라도 못할 때는 덜 못하고, 잘할 때는 좀 더 많이 잘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세상의 변화에 저희 고객들의 자산을 한 발 먼저 옮겨놓을 수 있는, 그런 작업들을 해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