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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사이코패스의 뇌, 강제로 바꿔도 될까?

■무엇이 옳은가

후안 엔리케스 지음, 세계사 펴냄

과거 죄악시 되던 피임·동거 등

시대·기술발전 따라 인식 변화

뇌 재설계 등 도발적 질문 통해

윤리에 대한 맹목적 확신 경종

옳고 그름의 '열린 가능성' 성찰





“늘 되풀이되는 일이긴 하지만, 한 사회가 갖고 있는 윤리적 규범은 언젠가 결국 바뀐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철갑처럼 단단해서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아도 말이다.”

윤리는 삶의 기준이다. 규범은 표준이라 여겨지는 삶을 제시한다. 기준과 규범은 절대적 성질로 여겨지기 쉽다. 지금의 윤리를 절대적인 것이라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TED가 가장 사랑한 미래학자’로 불리는 후안 앤리케스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의 신간 ‘무엇이 옳은가’는 이 근본적인 질문을 들고 나왔다. 지난 2014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불러온 정의에 대한 환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책인 셈이다. 저자는 오늘날 사회에서 벌어지는 상당수 첨예한 대립은 ‘옳고 그름’의 싸움으로 귀결된다는 것, 그런 사회적 논란을 바라보며 “어떻게 저토록 이기적이고 비상식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라며 비판하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무엇이 옳은지 확신할 수 있느냐고. 지금은 옳다지만 나중에도 그것이 옳은 선택일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느냐고. 책은 옳고 그름은 시간에 따라 바뀐다는 것, 우리가 윤리를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대상으로 여기지만 규칙은 변하고 영원한 진리는 없는 것임을 설파한다.

“우리가 올바르고 윤리적이며 표준이라 여기는 것들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확실성, 신념 그리고 우리가 늘 자명하고 영원한 진리라 믿어온 바들을 지탱하는 기둥들 중 많은 것들은 이미 무너졌다.”

단적인 사례로 종교계와 다윈 지지자 사이의 논쟁이 뜨거웠던 것은 채 200년도 되지 않은 일이고, 지금은 진화론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결혼이 아닌 동거는 1960년대만 해도 법적 처벌을 각오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법적 부부가 아닌 남녀의 동거, 동거 후 결혼 등이 흔하다. 규범의 변화를 가속화 하는 것은 기술이다. 과거 피임은 죄악이었다. 지금은 다양한 피임법이 생겨났으며, 결정적으로 그것은 여성에게 교육과 경력의 기회를 열어줬다. 피임이 ‘임신 없는 섹스’를 가능하게 한 데 이어 이제는 임신 없는 출산, 혹은 출산 없는 증식 등도 고려해야 할 때다. 기술력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그간 여성의 임신은 자연의 순리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여성의 임신 중지권, 정자은행을 통한 비혼모의 임신 선택권 관련 법률이 조정되고 있 있다.



저자의 상상력은 기발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서 온 후손이 유전병을 알고도 유전자 교정 없이 출산한 자신의 조상을 상대로 고소한다거나, 어떻게 아이를 뱃 속에 담고 지내고 직접 출산까지 강행했느냐며 미개하다고 흉볼 지 모른다는 얘기들을 펼쳐 놓는다. 그러면서 묻는다. 임신과 출산이 기계로 완전히 대체될 경우 생식 목적의 일부일처제는 존속할 수 있을지, 게이 커플이 대리모를 통한 체외 출산이 허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 장기이식과 화학적 거세가 일상용어가 된 마당에, 만약 사이코패스의 뇌 배선(Brain Wiring)을 바로잡는 기술이 발명된다면 사회는 사이코패스의 뇌를 강제적으로 바꿔도 되는 것인지도 질문한다.

7장으로 구성된 책은 ‘유전자 가위’ 논란까지 다룬 ‘인간을 다시 설계하는 것은 옳은가’로 시작해 기술이 윤리를 바꾸는 것, 과거에 옳았던 윤리가 지금은 죄악이 된 사례, SNS 속 윤리구조, 사회구조 시스템의 윤리 등에 대해 촘촘하게 짚는다. 기존의 승자식 기준, 좌파 아니면 우파 식의 이분법적 판단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고 동시에 불편하기도 한 ‘앞으로의 윤리’가 저자의 화두다.

엔리케스 교수의 주장은 확고하다. “많은 과학자가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대해서만 말한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과학기술이 우리의 사회와 경제 그리고 정치구조를 변화시키는지 생각한다”는 그는 “기술은 윤리를 바꾸어놓는다. 그러니 오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내일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고 조언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처럼 과거의 옳았음이 미래에도 옳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무엇이 옳은지 질문을 던진 저자는 절대적 정답 대신 열린 가능성에 대해 성찰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한 접근방식, 다양한 변수와 가능성에 대해 펼쳐보인다. 옳음을 주장하기 위해 상대를 비난하고 타인의 의견을 묵살하는 대신 논리적, 지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무기를 쥐어주는 책이다. 1만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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