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공식 석상에서 배현진 최고위원과 여과 없는 설전을 벌이면서 깊어진 내부 갈등의 골을 그대로 노출했다. 새 정권의 지원한 방향을 잡아야 할 여당 지도부가 번번이 갈등의 중심에 서며 소모적인 논쟁을 되풀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20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 모두 발언이 끝난 뒤 이 대표가 “오늘 비공개 회의는 (현안 논의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자 회의장이 순식간에 살얼음판이 됐다. 배 최고위원이 “일방적으로 없애면 어떡하냐. 회의를 단속해 달라고 누차 제안을 드리지 않았냐”고 불만을 쏟아내면서다.
이 대표는 “발언권을 얻고 말하라”고 제지했지만 배 최고위원은 “대표님께서 스스로 많이 유출했다”고 맞서서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책상을 치며 “그만합시다”라고 중재에 나섰지만 한동안 고성은 계속됐다. 이 대표는 비공개회의 3분 만에 자리를 떴다.
최근 사사건건 부딪히며 앙금을 쌓은 두 사람은 이날 비공개 회의 방침을 두고 갈등이 폭발했다. 이 대표는 이날 회의 시작과 함께 “비공개 (회의) 내용이 자꾸 언론에 따옴표까지 (붙여) 인용 보도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최고위 의장 직권으로 비공개 회의에서 안건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배 최고위원은 “비공개 회의를 철저히 단속해서 당내에서 필요한 내부 이야기는 건강하게 이어가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이 대표가 뜻을 굽히지 않으며 대립이 격화됐다.
이 대표의 “비공개 회의 유출” 발언은 사실상 배 최고위원을 정조준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13일 비공개 회의에서 배 의원은 이 대표가 발족시킨 혁신위원회에 대해 “자잘한 사조직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 16일 안철수 의원이 추천한 최고위원 2명에 대해 이 대표가 이견을 보이는 것에 대해 “졸렬해 보인다”고 저격했고 이 같은 발언이 추후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날 배 최고위원과의 충돌은 최근 이 대표와 정진석·안철수 의원과 갈등의 연장선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표의 윤리위원회 회부로 차기 당권 주자들의 경쟁이 조기에 점화된 가운데 이 대표가 윤리위, 혁신위 문제로 대내외에서 집중 포화를 받으면서 당내 주도권 싸움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 여권의 관계자는 “이 대표는 우군이 없어 혼자 각종 현안들을 돌파하고 있는 상황”아라며 “윤핵관 입장에서는 흔들리는 이 대표를 굳이 안고 갈 이유가 없으며, 현재 최고위에서 그 역할을 할 사람은 배 최고위원 뿐”이라고 말했다.
선거 기간 ‘원팀’, ‘무한책임’을 강조했지만 승리하자 집안싸움에 몰두하는 것에 대한 내부의 지적의 목소리도 나온다. 조수진 최고위원은 “여당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이게 다 (이) 대표가 만드는 것이지, 세상에 어떻게 여당을 이렇게 끌고 가나”고 피로감을 호소했다.
이 대표와 배 최고위원은 신경전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배 최고위원은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 대표를 또다시 저격했다. 배 최고위원은 “지도자의 한마디는 천금 같아야 한다”며 “당 지도부가 수시로 방송에 출연하며 ‘나는 다 알아요’ 식으로 지도부 회의 내용을 전파했을 때 그 작은 영웅담이 우리 스스로를 얼마나 우습게 만드는지 내내 안타깝게 지켜봐 왔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대 발언을 유출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하는 사람이 있어 ‘충격요법’을 쓴 것이다. 당내 기강을 잡는 것이 먼저”라며 비공개 회의 현안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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