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모호성은 더 이상의 해법이 아니다. 이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는 미·유럽 간의 공동방위 체제를 넘어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주요 글로벌 국가 간의 범동맹 체제를 다지는 기반이 됐다. 직접적인 위협이 된 러시아의 군사적 침공과 구조적 도전으로 규정된 중국의 팽창, 그리고 글로벌 차원의 신흥 안보 이슈의 대두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국들의 공조 체제가 확인됐다. 오랫동안 중립을 지켜왔던 스웨덴과 핀란드는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나토 회원국으로의 행보를 확고히 했다. 이처럼 국제 질서의 큰 흐름이 바뀌는 상황에서 한국이 한반도의 특수성을 넘어서 보다 보편적인 가치를 외교 전면에 내세우면서 범동맹 체제의 일원으로서 정체성을 공고히 한 것은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 이제 그 선택을 한국 외교 영역의 확대로 이어가는 것이 다음 과제다.
한미일, 그리고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를 잇는 아태 4개국의 다자 안보 협력 논의의 시발점이 다시 마련된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나아가 한반도 안보에서 종종 부차적으로 여겨졌던 대(對)유럽 외교를 나토와의 글로벌 안보 협력이라는 틀에서 강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 것도 큰 성과다. 미완성 상태로 있던 나토 대표부의 설치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히 경제안보와 신흥 안보의 급변하는 도전들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는 여러 우방국들과의 긴밀한 공조가 필수적이다. 원전과 방위산업의 해외 진출의 기회도 확대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다자 협력의 틀은 경색국면의 한일 관계를 복원시키는 데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 정착의 난제는 단순한 가치 동맹 차원에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북한의 핵 보유 의지는 더욱 강화됐고 중국의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투사도 결코 감소되지 않았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정착을 위해 한국이 관리해야 할 리스크는 여전히 상존한다. ‘덜 대립적인’ 역내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전히 중견국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 설정은 유럽과 한국, 그리고 아태 국가들의 고민이 중첩되고 창조적인 해법을 위해 상호 간의 지속적인 소통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는 한국이 핵심 당사국에서는 한 발 떨어져 여러 의제에 대한 원칙적인 입장을 밝히고 공조를 확인하는 시발점이었다. 이제 보다 직접적으로 한반도 안보의 해법을 모색할 무대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평화는 혼자 힘으로는 이룰 수 없다. 보다 많은 우방들이 함께해야 보다 견고한 해법을 마련할 수 있다. 또한 가치 외교는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주도할 수 있을 때 의미를 가진다. 국제적인 공감대를 만들어 낼 ‘더 큰 외교’를 해야 할 시점에 왔다. 과거와 달리 반도체와 배터리·첨단 산업 분야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으며 경제력에 부합하는 보다 큰 외교적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능동적으로 지정학의 변화에 뛰어들어야 새로운 경기의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 강대국 간 힘의 균형 사이를 찾아 수비적으로 대응하려고 할 때, 한반도의 지리적 운명은 자칫 여러 세력들이 부딪치는 경기장이 되기 십상이다. 민주주의라는 가치의 공유를 기반으로 한 범동맹 체제를 갖추고 그 기반 위에서 북한과 중국에 대한 소통과 리스크 관리에 나설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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