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에서 윤여정 선생님이 수어로 제게 ‘아이 러브 유(I love you)’라고 말할 때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선생님이 (남우조연상) 트로피를 들어줘서 편하게 수어로 소감을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매우 감사드립니다. 뵙게 된다면 그분의 깊이 있는 연기와 관련된 대화를 많이 나누고 싶습니다.”
미국의 농아인(청각·언어장애인) 배우 겸 프로듀서 트로이 코처는 6일 서울 중구 앰배서더서울풀만호텔에서 열린 내한 기자회견에서 3월 아카데미 시상식의 기억을 이같이 떠올렸다. 그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코다’로 비장애인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남우조연상을 수상해 미국은 물론 국내 대중에도 이름을 알렸다.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 당시 윤여정과 더 대화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었다며 “저에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시상해준 윤여정 선생님을 가장 먼저 뵙고 싶다”면서 “언젠가는 같이 영화 작업도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인상 깊게 본 한국 콘텐츠로 윤여정의 아카데미상 수상작인 ‘미나리’를 꼽기도 했다. 다만 코처는 이번 방한 기간에는 윤여정과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다며 “기회가 되면 꼭 뵙고 싶다”고 전했다.
코처의 방한은 이번이 처음으로 내년 제주도에서 열리는 제19회 세계농아인대회(WFD)의 홍보대사로 위촉됨에 따라 이뤄졌다. 그는 이날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면담하며 관심을 요청한 것을 비롯해 8일에는 행사가 열리는 제주도를 찾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한다. 코처는 세계농아인대회가 “전 세계 농아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모든 것을 논의하며 교류할 수 있는 장”이라며 “농아인들의 자립과 통합, 정부를 향한 정책 건의 등을 할 힘을 기를 수 있는 자리”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동안 여러 차례 농아인이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며 그들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거듭해서 강조했다. 그는 “장애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며 “농아인이지만 한계는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영화뿐 아니라 생활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농아인 배우가 열정이 있고 기회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제공된다면 다른 비장애인 배우와 똑같이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듣지 못하지만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보다 두세 배 이상 시각이 발달해 있어서 다른 이들의 연기를 열심히 관찰하면서 연습을 많이 했다”고 돌아보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비장애인이 극중 장애인 역할을 연기하는 일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며 맡는 역할도 아직까지는 한정적이다. 이에 대해 코처는 “할리우드에서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연기하는 경우가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농아인이 가능한 역할이 한정적이라는 생각은 선입견”이라며 “이를 테면 한 국가의 대통령 역할을 농아인이 맡기도 하는 등 역할이 늘었다.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영화 관계자들에게도 “농아인 배우에게 역할을 맡기는 데 두려움 없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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