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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임은 삶…눈 감는 순간이 내 마지막 마임"

'데뷔 50주년' 국내 1세대 마임이스트 유진규

몸짓으로 사회에 질문하는 행위

흥미 위주의 판토마임과는 달라

'있는 그대로'의 내용 전달하려 해

마임이스트 15배 가량 늘었지만

본질 추구하는 이들은 점점 줄어

1세대 마임이스트 유진규 씨가 기의 흐름을 표현하는 동작을 마임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무 말 없이 물이 흐르듯 천천히 손을 휘감는다. 처음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음에는 위에서 아래로. 얼핏 태극권을 닮았다. 손등과 손바닥이 얼굴 앞에서 교차와 뒤집힘을 반복하기도 한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합쳐지고 갈라지듯이 순간 손과 얼굴이 하나가 되기도 하고 여러 개가 되기도 한다. 말 없이 몸짓만으로 조용히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예술 ‘마임(mime)’의 일부다.

강원도 춘천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진규(70) 씨는 50년 동안 마임 외길을 걸어온 국내 1세대 마임이스트다. 1972년 극단 ‘에저또’의 실험 연극 ‘건널목 삽화’로 데뷔했을 당시 국내에 마임을 하는 예술인은 유 씨와 그의 친구 단 두 명뿐이었다. 이후 어설픈 도둑의 이야기를 담은 ‘첫 아행’, 인간의 욕망과 아집을 다룬 ‘빈손’ 등 4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마임이스트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내성적이고 사람보다 동식물을 좋아했던 그가 마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스무 살 때부터. 그는 “삶에 대한 고민이 컸다. 살 것이냐, 말 것이냐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나까지 고민의 연속이었다”며 “그때 길을 보여주고 삶의 재미를 보여준 것이 마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판토마임과 자신이 추구하는 마임을 엄격히 구분한다. 판토마임은 하얀 분칠을 한 피에로가 나와 흥미 위주로 진행하는 희극적 행위다. 보통 사람들이 마임 하면 떠올리는 모습이다. 유 씨의 마임은 다르다. 사회에 질문을 던지기 위한 행위다. 유 씨는 “여러 인물을 표현하면서 삶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공유하고 싶었다”며 “시대의 몸짓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마임이라는 서양 용어 대신 ‘육체 표현’이라는 우리말을 쓰는 이유도 비슷하다. 마임은 말 없이 몸으로 하는 예술이다. 유 씨는 작위적인 것을 빼고 진짜 날것을 드러내 진솔한 대화를 유도하려 한다. 몸을 드러내는 옷 하나만 입고 무대에 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임이스트는 어쩔 때는 여자로, 다른 때는 청년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몸을 드러냄으로써 인간 본연의 모습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진규 씨가 사물의 형태 변화를 의미하는 동작을 마임으로 표현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회적 이슈에 매달렸다. 군부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세상이 나를 자유롭게 놓아두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 직접 맞서 싸우지 못하는 데 대한 자괴감도 있었다. 춘천 인근으로 내려온 것은 일종의 도피였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2013년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을 타의로 그만둔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큰 충격을 받았지만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그는 “이제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아가는 게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며 “작품의 내용도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기보다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만들지 않는다. 있는 자체. 표현이 그렇게 바뀌어 간다.

아쉬운 것은 작가 의식을 가진 마임이스트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마임협의회 소속 회원들은 대략 70~80여 명 선. 1989년 5명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수적으로는 크게 늘었다. 문제는 이들이 무대에서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있느냐다. 그의 대답은 ‘아니오’다. 유 씨는 “요즘 거리 축제가 많아지면서 마임이스트들이 출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대부분 흥미를 위주로 하는 어릿광대로 활동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무대 공연 예술자로서의 마임이스트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외형은 커졌지만 본질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갈수록 적어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 씨는 70대에 들어섰지만 마임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오히려 “나의 마지막 마임은 내가 눈을 감는 것”이라고 외친다. 살아가는 존재 이유이자 의미를 이대로 끝내고 싶지는 않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신 희망 사항은 있다. 대중들이 말이나 글이 없더라도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바란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생활 속에서 각자의 마임을 하며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다”며 “말 없는 세계를 알게 되는 순간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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