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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용암이 빚은 신비…1만년전 '불의 길'을 걷다

세계자연유산 '제주 용암동굴' 탐방

거문오름서 용암 분출로 동굴 형성

미로처럼 좁고 복잡한 4.5㎞ 벵뒤굴

칠흑 속 노란·흰색 미생물 반짝반짝

10월 1~16일 '세계유산축전' 열려

만장굴 비공개 구간·김녕굴도 공개

제주도의 대표적 용암 동굴인 벵뒤굴 입구에서 한 방문객이 동굴을 살펴보고 있다. 연중 대부분은 비공개 상태인데 10월 '세계유산축전'에서 일부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가지고 있던 손전등과 헤드 랜턴은 물론 휴대폰까지 모두 껐다. 주위가 깜깜해졌다. 아무 빛이 없는, 말 그대로의 암흑천지다. 눈으로 볼 수 없으니 귀가 오히려 잘 들였다. 똑, 똑, 똑, 물 흐르는 소리만 났다. 영원과 같은 시간 10초가 흐른 후 다시 랜턴이 켜지면서 주위가 인식됐다. 기자들을 안내하던 세계유산본부의 기진석 학예연구사는 “용암이 여러 번 흘렀고, 우리는 용암 위에 있는 셈”이라며 “1만 년의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10월 열리는 제주 세계유산축전을 앞두고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 가운데 가장 신비한 용암 동굴인 ‘벵뒤굴’을 방문했다. ‘벵뒤’는 ‘넓은 벌판’을 의미하는 제주어다. 용암이 지하로 퍼지면서 동굴이 형성됐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탐방객들이 벵뒤굴의 좁은 틈을 빠져나오고 있다.


동굴 입구에 서니 안으로부터 차가운 바람이 불어 나왔다. 탐방객들은 모두 탐방용 슈트와 안전모, 무릎 및 팔꿈치 보호대, 장갑까지 착용했다. 동굴이 좁고 또 복잡해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벵뒤굴의 전체 거리는 4.5㎞로 추산된다.

동굴의 좁은 바닥에는 화산석들이 부서져 있었다. 어두운 공간이어서 잘못 디디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헤드 랜턴에 의지해 조심조심 발을 옮겼다. 동굴 벽에 반짝반짝 금 같은 게 묻어 있다. 기 학예사는 “미생물이 자라면서 노란색이나 흰색으로 보인다”면서 “절대 만지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동굴 내에는 제주도에만 서식하는 곤봉털띠노래기·성굴통거미·제주동굴거미 등 37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탐방객들이 벵뒤굴 내부에서 천장을 관찰하고 있다.


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동굴 중간에 작은 돌들로 막혀 있는 것이 보였다. 4·3 당시 이곳에 숨었던 제주민들이 불빛이 새지 않게 막았던 곳이라는 설명이다. 한 시간 정도 동굴을 답사했는데 냉기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땀 범벅이다.

거문오름에서 용암이 분출되면서 수많은 용암 동굴을 만들었다. 거문오름은 해발 456m(둘레 4551m)로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펼쳐져 있다. 1만 년 전쯤 분출된 용암은 거문오름을 꼭짓점으로 15㎞를 북동쪽으로 달려가면서 조천읍과 구좌읍 일대에 부채꼴 모양의 흔적을 남겼다.

벵뒤굴은 거문오름에서 800m 떨어진 조천읍 선흘리에 위치한다. 거문오름에서 나온 용암이 가장 먼저 거쳐간 곳이다. 벵뒤굴은 평소 폐쇄돼 있는데 이번에 세계유산축전을 앞두고 1년여 만에 공개됐다.

만장굴 입구. 국내 용암 동굴로서는 최대 규모다.


제주도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지정 대상은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 등 3구역이다. 이 가운데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방문해서 관찰할 수 있다.

반면 용암 동굴은 훼손 우려 때문에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상태다. 제주도 전체로는 150여 개의 용암 동굴이 있다고 조사됐다. 그중 거문오름의 용암이 이어 지나간 벵뒤굴·웃산전굴·북오름굴·대림굴·만장굴·김녕굴·용천동굴·당처물동굴 등 8곳이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라는 이름으로 세계 자연유산에 등록돼 있다. 이 중에서 만장굴만, 그것도 일부 구간만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만장굴의 비공개 부분을 탐방하고 있다.


만장굴의 경우 전체 길이가 7.4㎞를 넘는데 용암 동굴 가운데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길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만장굴(萬丈窟)이다. 동굴은 최대 높이 23m, 폭은 18m로 거대하다. 이 가운데 2구간인 1㎞ 내외만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내부에 설치된 전등이 길을 밝힌다. 실제 비경은 1구간과 3구간인데 훼손 우려로 비공개 상태다.

만장굴 옆에는 김녕굴이 있다. 700m 길이로, 과거에는 공개했는데 훼손이 심해지면서 현재는 비공개 상태다. 최대 높이 12m, 폭 4m로 상대적으로 큰 동굴에 속한다.

‘용암 동굴’은 생성 원인이 용암이라는 점에서 강원도 등에 많은 ‘석회 동굴’과는 다르다. 분출된 거대한 용암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지하에 큰 구멍이 생겼는데 이후 용암은 사라지고 구멍만 남았다. 이 때문에 마치 지하철 터널처럼 거대한 동굴이 만들어지게 된다. 반면 석회동굴은 지하수에 의해 석회암이 녹으면서 생긴 동굴로 상대적으로 좁고 또 복잡하다. 즉 석회 동굴이 ‘물의 길’이라면 용암 동굴은 ‘불의 길’인 셈이다.

탐방객들이 김녕굴로 들어가고 있다.


세계 자연유산 8곳 가운데 당처물동굴은 1995년 밭을 갈다가, 또 용천동굴은 2005년 전신주 공사를 하다 각각 발견됐다. 아직 발견을 기다리는 동굴이 더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한 탐방객이 김녕굴 내부를 관찰하고 있다.


제주도는 10월 1일부터 16일까지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을 주제로 제3회 세계유산축전을 연다. 축전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거문오름에서 시작해 월정 앞바다까지 용암을 따라가는 ‘세계 자연유산 워킹투어’가 진행되는데 특히 만장굴(비공개 구간)과 김녕굴·벵뒤굴을 탐험하는 ‘세계 자연유산 특별탐험대’도 준비돼 있다.

행사 총괄을 맡은 강경모 총감독은 “자연유산 보호를 위해서는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의지로 축전 기간에 비공개 용암 동굴들의 공개를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제주)=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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