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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현실 오롯이 못 담는 '통계 착시'

박성호 금융부 차장


이렇게 가정해보자. 지난달 100가구가 모여 사는 우리 동네의 가구당 평균 소득이 500만 원이었는데 이달 다시 조사해보니 1000만 원이 됐다. 동네가 한 달 만에 2배로 잘살게 된 셈인데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통계 결과가 나오는 일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수십 억 원의 연봉을 받는 대기업 회장이 우연하게 이번 달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다면 말이다. 그렇다고 이 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대 국내 프로야구 선수 중 이상목이라는 투수가 있었다. 그는 총 17시즌을 뛰며 통산 방어율 4.30 정도에 100승을 거뒀다. 122패를 기록해 패한 적이 더 많았고 9이닝당 평균 삼진 수는 6개 정도. 그의 팬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기록상으로나 기억상으로나 아주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최근 한국야구위원회가 프로야구 역대 레전드 선수 40명을 선정한다기에 오랜만에 야구 통계 사이트인 ‘스탯티즈’에 들어가 봤다. 그리고 이것저것 살펴보다 이상목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야구 통계에 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라는 것이 있는데 이 선수의 WAR은 32.86으로 역대 투수 중 29번째로 높았다. 20년 전에 사용했던 방어율 등 전통적인 통계에서는 그의 가치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던 셈이다.

최근 국내 금융기관의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이 발표됐다. 대출을 받은 사람이 신용도에 변화가 있어 금융기관에 금리를 내려 달라고 요구하고 그것을 금융기관이 얼마나 수용한지를 보여주는 통계다. 하지만 초점이 수용률에 맞춰져 있다 보니 그 이외의 숫자가 가진 사연은 무시돼 버렸다. 실제로 한 대형 은행의 수용률은 30%도 채 되지 않아 시중은행 중 꼴찌를 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수용률이 낮은 그 은행은 다른 은행들과 달리 애초 비대면으로 쉽게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 놓은 곳이었다. 그래서 신청 건수가 타 은행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수용률이 공개되니 이 숫자만 보였고 순위를 매겼으며 숫자 속의 숨은 수많은 이야기와 사연들은 무시돼 버렸다.

마크 트웨인은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는데 그것은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했다. ‘풍자’에 가깝지만 그만큼 예전부터 통계가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방증일 게다. 공개된 통계가 무조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특히 정책 결정의 기초가 되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통계는 더 정밀해야 하고 그 속에 숨은 사연까지 제대로 드러내 줘야 한다. 소비자 권익을 높이기 위해 공개한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이나 예대금리 차와 같은 통계도 마찬가지다. 통계가 권익을 위해 노력한 이들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왜곡되거나 오해될 수 있다면 개선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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