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만화작품이 최근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만화축제에서 전시된 데 대해 정부가 ‘발끈’한 가운데 이에 때해 야당이 일제히 비판하며 ‘표현의 자유’ 논란으로 확전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만화 작품과 관련해 4일 오전 설명자료를 내고 “(공모전을 진행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만화영상진흥원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주최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 것은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지극히 어긋난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체부는 “비록 전국학생만화공모전을 주최한 만화영상진흥원이 부천시 소속 재단법인이긴 하지만 국민의 세금인 정부 예산 102억 원이 지원되고 있고, 이 공모전의 대상은 문체부 장관상으로 수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체부는 이날 저녁 추가 자료를 내 이 행사가 후원명칭 사용 승인 사항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문체부에 따르면 만화영상진흥원이 후원명칭 사용 승인 요청을 할 당시 제출한 공모전 계획은 ▲작품의 응모자가 불분명하거나 표절·도용·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는 경우 ▲정치적 의도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작품 ▲응모요강 기준(규격, 분량)에 미달된 경우 ▲과도한 선정성·폭력성을 띤 경우를 결격 사유로 정하고 있다.
문체부는 “실제 공모요강에서는 이같은 결격사항이 누락됐고, 심사위원에게 결격사항이 공지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며 “또한 미발표된 순수창작품인지에 대해 깊이 있게 검토되지 않았다는 점도 확인했다. 따라서 만화영상진흥원은 당초 승인 사항을 결정적으로 위반해 공모를 진행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체부 후원명칭 사용 승인에 관한 규정 제9조 제1항 ‘승인한 사항을 위반하여 후원명칭을 사용한 것’에 해당하는 승인 취소 사유”라며 “문체부는 규정에 따라 신속히 관련 조치를 엄정히 이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된 작품은 지난달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열린 제25회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윤석열차’라는 제목으로 전시된 만화다. 한국만화박물관에 전시된 이 작품은 고등학생이 그린 것으로 지난 7∼8월 진행된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경기도지사상) 수상작이다. 작품에는 윤 대통령의 얼굴이 담긴 열차에 부인 김건희 여사로 추정되는 여성이 운전석에 탑승하고, 칼을 든 검사 복장의 남성들이 객실에 줄줄이 타고 있다. 열차 앞에는 시민들이 놀란 표정으로 달아나고 있다.
진흥원의 무작위 추천으로 선정된 공모전 심사위원들은 작품성과 완성도 등을 기준으로 평가해 지난달 중순께 이 작품을 금상에 선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1998년 설립된 부천만화정보센터를 모태로 2009년에 출범한 부천시 산하기관으로 한국만화박물관 운영, 부천국제만화축제 운영, 수출작품 번역지원 등 국내 만화산업 발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매년 국비 100여억원과 도비·시비 9억원 등 110여억원을 지원받고 있으며 직원 수는 50여 명이다.
진흥원의 신종철 원장은 열린우리당·민주당 소속 경기도의원을 지냈고 2016년에는 부천원미갑에서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등록하기도 했다. 진흥원 측은 그러나 애초 예정된 전시회에 수상작을 전시했을 뿐이며 다른 어떤 의도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다만 만화영상진흥원의 해명과는 별개로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 논란으로 확산되는 상황이다. 이날 시작된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중요한 이슈가 됐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이날 ‘윤석열차’에 대한 문체부의 대응은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집중 공격했다.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에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당 그림을 제시하며 의견을 묻자 “아무 정보가 없지만, 그림만 봤을 때는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표현의 자유에 포함되지 않나”라고 답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SNS에서 “정작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핍박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회 정무위원회 국무조정실·국무총리 비서실 국정감사에서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이게 대한민국 현실”이라며 “학생이 정치적 색깔을 너무 드러낸 그림 아니냐”라고 문체부의 조치를 두둔했다. .
‘윤석열차’ 논란은 여야를 넘어 전방위로 확산중이다. 박지원 국가정보원 전 원장은 4일 개인 SNS를 통해 “학생이 ‘윤석열차’ 만화 공모전에 수상하고 전시하니 문체부에서 법석”이라며 “문체부 후배들! 우리가 청소년 업무를 하면서 끼를 살리자고 했잖아. 만화는 만화로 보고 청소년 창작욕과 끼를 살린다는 의미에서 그만하라”고 주장했다.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부천시의 조용익 시장도 SNS에서 “기성세대의 잣대로 청소년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간섭해서는 안 된다”며 “어디선가 상처받아 힘들어하고 있을 학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국 학생만화공모전의 공모 부문은 ‘카툰’과 ‘웹툰’이었고 공모주제는 ‘자유 주제’였다”며 “카툰 공모에 왜 풍자를 했냐고 물으면 청소년이 뭐라고 답을 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국민의힘과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는 이날 SNS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고등학생과 대학생이면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날 것 같은데 만화로 정치 세태를 풍자하는 것은 경고의 대상이 되고, 쿠데타를 일으킨 대통령에게 모의재판에서 사형을 구형한 일화는 무용담이 되어서는 같은 잣대라고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서울대 법학과 재학 당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학내 모의재판에서 검사 역할을 맡아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한 것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에서는 해외 유사 작품과의 표절 의혹을 제기하며 방어하고 있지만 다소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대통령실은 4일 오후 브리핑에서 ‘윤석열차’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관련 부처에서 대응했다면 그것을 참고해주기를 바란다”며 “따로 입장을 내지 앟겠다”고 전했다.
/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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