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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과학 출연硏 42%, 주52시간 뒤 성과지표 셋 중 둘 악화

■'주 52시간' 묶인 과학계 출연硏

과학 출연연 52시간 도입 전후 분석

시행 후 특허·기술이전 등 뒷걸음

'연구활동에 제약' 지표로 첫 확인

인력난에 주52시간 겹쳐 이중고

인력운용·보상에 재량권 요구 나와

'규제 대개혁' 필요 목소리도 커져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위치한 세종국책연구단지./사진 제공=국가과학기술연구회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42%가 문재인 정부 시절 주 52시간제 등이 적용된 뒤 핵심 성과 지표 세 가지 중 두 가지 이상이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과학계에서는 주 52시간제로 연구 활동에 제약이 크다는 호소가 많았는데 도입 전후 연구 성과가 나빠졌다는 객관적 지표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형섭 초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강조했던 ‘불 꺼지지 않는 연구소’라는 말이 사라지면서 폐해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 제출받은 출연연 24곳(녹색기술센터는 실적 미비로 제외)의 ‘주요 업무(연구) 실적·성과’ 자료에서 주 52시간제 시행 전인 2018년과 2021년을 비교한 결과 ‘특허등록’ ‘논문게재’ ‘기술이전’ 등 성과 지표 세 가지 중 두 가지 이상이 악화한 출연연이 10곳(41.75%)에 달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과 항공우주연구원은 성과 지표 세 가지가 모두 나빠졌다. 핵융합에너지연구원과 한의학연구원·기초과학연구원 등 8곳은 두 가지가 악화했다. 성과 지표가 모두 향상된 곳은 5곳에 불과했다.

출연연 등 공공연구기관은 2019년 7월 1일부터 주 40시간 근무를 기본으로 해 52시간 상한제가 적용됐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각 출연연에 재량근로시간제 등 유연근로제를 도입, 대응하게 했으나 주 52시간의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주 52시간제에서 기본 근무시간은 주 40시간이기 때문에 연구자들 사이에 주 40시간만 채우면 된다는 의식이 퍼지고 있다는 게 과학계의 전언이다.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은 “출연연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촘촘한 관리를 받다 보니 연구와 인력 운용에서도 자율성이 떨어진다”며 “주 40시간, 나아가 주 52시간 상한제가 연구 현장에는 맞지 않아 재량근로제 실시 등으로 타개하려 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도 “과학기술 현장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주 52시간제를 강행한 결과 대한민국 과학기술 역량의 추락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권욱 기자


기술이전·특허등록 줄줄이 반토막…'몰래 추가연구' 촌극도


“정부출연연구기관 등 공공연구원에서 남들 몰래 연구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질 지경입니다.”



최근 여당 관계자를 만난 과학기술계 연구자들은 과도한 규제에 짓눌린 출연연의 현실에 대해 이같이 하소연했다. 가뜩이나 인력 부족에 고충을 겪던 출연연 연구자들이 2019년 7월부터 주52시간 상한제 적용으로 이중고를 겪게 되자 촉박한 연구 과제 마감 시한을 지키기 위해 남들의 눈을 피해 몰래 추가 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경제와 안보·과학기술이 한 몸으로 움직이는 기술 패권 시대를 헤쳐가기 위해서는 출연연에 국가전략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의 자율성과 인재 선발·운용에 관한 재량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연구 현장에서 주52시간 상한제 등 규제와 간섭을 여전히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결과 주요 출연연들의 핵심 성과 지표가 줄줄이 추락했다.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소속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서 제출 받은 출연연 24곳(녹색기술센터는 실적 미비로 제외)의 ‘주요 업무(연구) 실적·성과’ 자료에서 이 같은 문제가 드러났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서는 지난해 기술이전과 특허등록 건수가 2018년에 비해 각각 59%·51% 줄어드는 등 반 토막이 났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도 기술이전·특허등록 건수가 각각 56%·40% 감소했다. 핵융합연구원도 특허등록 건수가 23% 줄었다.

1815A02 성과지표 2개 이상 악화된 출연연 수정


해외 유수 연구소들이 연구개발(R&D) 투자와 인력 운용의 자율성을 부여 받아 우수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의 출연연들이 정부에서 과도한 규제와 간섭을 받는 탓에 예산 투자를 많이 해도 R&D 효율성은 낮은 ‘코리아 R&D 패러독스’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미혜 한국화학연구원장은 “R&D 예산이나 인력 채용·운영에서 출연연에 재량권이 별로 없는 게 애로 사항”이라며 “연구 책임자들이 인건비·직접비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임팩트(영향력) 있는 연구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의 경우 예산의 60%가량을 인건비로 지출하며 좋은 연구자를 많이 채용함으로써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연구자들이 자존감과 사명감을 갖고 성장할 수 있게 연구 환경을 조성하고 평가 문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실례로 화학연의 경우 연구자의 90%가량에게 연봉이 깎이지 않는 B등급 이상을 주고 있는데 열심히 연구하는 연구자에 대한 의욕을 고취하기에는 미흡하다.

정부가 국가 R&D 시스템을 재설계할 때 출연연 등 공공연구원에 자율적인 연구비 집행, 인력 채용과 보상에 대한 재량권을 줘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이미혜 원장은 “화학연은 정부 출연금이 65%, PBS(연구원들이 과제를 수주해 인건비로 충당하는 시스템)가 35%”라며 “정부에서 연구비를 주면 알아서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오히려 예산 낭비를 막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연구원들이 연평균 4~5개 과제(인건비 3배가량)를 진행하는데 대부분 기관 과제보다는 개인 과제에 중심을 둔다”며 “외부 수주 과제는 인건비 정도로 제한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이를 통해 출연연에서 국가 임무형,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보다 연구자가 수주한 과제에 더 집중하는 폐단을 막자는 것이다.

출연연 등 공공연구원의 내년 예산이 정체되고 정원도 동결된 가운데 블라인드 채용(경력·학력을 따지지 않고 뽑는 방식) 규제로 인재 선발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장은 “경제위기 시대에 내년에 R&D 예산이 정체되고 정원도 동결해야 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며 “독창성과 창의성, 지속 가능성이 있는 연구를 위해 연구 현장의 자율성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신입 연구자를 뽑으면 20%가량은 그만두고 기존 연구자도 대학 등으로 이직하는 가운데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가 지역 인재 선발에도 제약으로 작용한다”고 전했다.

결국 연구 현장에서 제반 규제에 대한 대개혁을 통해 자율성을 높여주는 것이 필수라는 지적이다. 국양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은 “연구 현장에 말도 안 되는 규제가 많다. 나열하면 한이 없다”며 “윤석열 정부에서는 아예 안 되는 것만 규정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패러다임 대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은 “기술 패권 시대에 출연연 등 공공연구원에 자율성을 대폭 늘려줘야 한다”며 “출연연도 임팩트 있는 국가전략기술 육성을 통해 국가 임무형,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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