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원유 증산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증산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사우디 실권자인 빈살만 왕세자는 “이미 하루 1200만 배럴을 생산하는 데 더는 추가 생산 여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서방 언론은 바이든 대통령이 홀대를 받았다는 시각을 보였지만 일부에서는 실제로 사우디의 원유 공급 능력이 부족하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과정에서 폭락했던 유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다시 폭등한 가운데 가격이 급등락하는 변동성은 한층 커지고 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위기를 불러오지만 특히 우리나라에는 더 치명적이다. 우리나라는 하루 평균 280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한다. 이는 전세계 석유수요의 3% 가량이다. 우리나라 인구가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그러면 유가는 왜 오르고 내릴까. 여기에 시사점을 주는 것은 최근 번역 출간된 ‘석유의 종말은 없다(원제 Crude volatility·유가 변동성)’다. 저자는 30여년간 에너지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맥널리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에너지 참모로 일했으며 이후 에너지 컨설팅 및 시장 자문회사 래피던에너지그룹을 설립해 대표로 있다.
책은 지난 1855년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오일 크리크(기름 개울)’가 발견된 사례를 시작으로,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와 그의 회사인 스탠더드오일의 흥망성쇠, 그리고 텍사스 석유 시대를 이끈 텍사스철도위원회(TRC),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탄생, 셰일오일의 발견 등 160여년 석유의 역사와 그에 따른 유가의 변동을 담았다.
석유는 대표적인 비탄력적인 가격의 필수 재화로서, 대개 수요가 일정하다.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소비가 크게 줄어들거나 아니면 가격하락에도 소비는 쉽게 늘지 않는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공급이다. 석유의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은 떨어지고 반대면 올랐다.
가격을 안정된 수준에서 통제하려는, 즉 유가의 변동성을 줄이려는 노력이 바로 석유의 역사인 셈이다. 미국에서 생산에서 정제까지 전체 석유산업 지배에 처음 성공한 것은 록펠러다. 록펠러는 1863년 석유 사업을 시작해 한때 미국 석유생산의 90%를 장악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록펠러의 시대에 미국 유가는 가장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1911년 반독점법의 적용을 받아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은 34개의 기업으로 분리된다. 동시에 미국 석유시장의 무한경쟁과 가격의 변동성이 다시 확대된다.
이번에는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섰다. 미국의 대표적 유전지역인 텍사스주 텍사스철도위원회(TRC)는 1935년 쿼터제 등을 통해 지역 석유 생산량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미국밖에서는 BP·엑슨·걸프 등 미국과 유럽의 거대 다국적 7개 석유회사(이른바 7자매·Seven Sisters)가 전세계의 석유산업을 지배한다.
미국이 가진 석유시장에서의 힘은 이 나라가 석유 순수입국으로 돌아서면서 꺾이기 시작한다. 대신 다른 석유수출국들이 1960년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만들면서 목소리를 키웠다. 처음에 미미 존재이던 OPEC은 1973년 유가를 한꺼번에 두 배 이상 올리는 ‘오일쇼크’를 일으키면서 세계에 충격을 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한 OPEC이 글로벌 석유산업을 지배하던 시기는 마찬가지로 유가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시기였다.
글로벌 석유시장에서 자체적인 생산량 조절을 통해 전체 수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세력을 ‘스윙프로듀서(swing producer)’라고 하는데 석유 역사에서 최초는 스탠더드오일, 둘째는 텍사스주, 세번째가 사우디였다.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이제 더이상 스윙프로듀서가 없다는 점이다. 사우디는 의도적으로 유가를 지지하거나 낮추기 위해 독자적인 증산이나 감산을 단행할 여력이 없다고 이미 선언했다. 여기에 더해 석유수출국 으로서 러시아 등 불량국가의 출현도 석유 수급의 전망을 쉽지 않게 한다. 또 다른 유가 변동성 확대 이유는 미국의 셰일오일 혁명이다. 미국에서 셰일오일의 생산이 급증하면서 수십년만에 다시 미국이 글로벌 석유시장의 주요 행위자가 됐다.
독점이나 카르텔, 트러스트 등으로 비판을 받았던 시기의 유가가 안정적이었던 것이 아이러니다. 저자의 집계에 따르면 원유가격의 변동폭은 록펠러 이전인 1차 변동기가 53.3%로 가장 높았고 2차 변동기는 35.9%, 그리고 2019년까지 3차 변동기는 34.5%였다. 반면 록펠러 시대(1879~1911)의 변동폭은 24.9%, 텍사스시대(1935~1973)는 3.6%, OPEC 시대(1973~2008)가 24.1%였다.
저자는 “현재 카르텔로서 OPEC의 역할은 매우 과장돼있다”며 “이미 관리자가 없어진 상태에 국제 석유시장은 과거처럼 방대한 변화와 지속적인 불균형과 격변으로 특징 지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현명한 대응전략을 주문했다.
책의 뚜렷한 주장과는 달리 우리말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쉽다.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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