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금융안정상황 설명을 통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건설사 구조 조정’과 ‘부실 금융기관 정리’ 등 구체적인 위기 대응 방안을 강조하고 나섰다. 부동산 경기가 연착륙하지 않으면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와 같은 갑작스러운 위기 국면이 전개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23일 한국은행은 금융안정상황 설명회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관련해 시장 상황에 맞춘 시점·단계별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동산 시장 위축 정도에 따라 유동성 지원, 부실 채권 정리 건설사 구조 조정, 부실 금융기관 정리 등 순차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달 9일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통해 “부동산 PF 구조 조정이 지연되면 관련 비용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 데서 한 발 더 나아간 경고다.
한은에 따르면 비은행 금융기관의 PF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규모는 115조 5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상장 건설사 72곳 중 44곳은 부동산 PF와 중도금 대출 보증 등 부동산 관련 우발채무를 보유하고 있다. 한은은 주요국 통화 긴축 기조, SVB 파산 등 대외 요인이 국내 경기 둔화, 부동산시장 부진 등과 맞물리면 시장 변동성이 커질 뿐 아니라 대출 부실, 외국인 자금 유출 등으로도 파급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김인구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부동산 PF의 단계별 대응책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며 “구체적인 수단 등은 관계 기관 등에서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외 요인 불안으로 금융불안지수(FSI)도 5개월째 경고등이 켜졌다. 금융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실물·금융 지표를 표준화한 FSI는 올 1월과 2월 각각 22.7(22 이상은 위기 단계), 21.8로 집계됐다. 레고랜드 사태의 여파로 지난해 10월(23.5) 이후 고공 행진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실물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계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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