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메시지가 오면 울리는 ‘카톡’ 소리, 넷플릭스를 시작하면 나오는 ‘두둥’ 소리.
이들 소리는 단순한 알림음이나 효과음이 아니라 카카오톡과 넷플릭스라는 서비스 브랜드를 대표하는 소리다. 이처럼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때 청각으로 느끼는 경험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시대다. 기업들도 소리를 통해 소비자들과 교감하고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1세대 ‘사운드 디자이너’인 남궁기찬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는 7일 서울 성북구 교수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사운드 디자인이란 특정 순간 어떤 소리를 통해 제품 및 서비스 사용자에게 더 좋은 경험과 브랜드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흔히 사운드 디자인이라 말하지만 정확한 명칭은 ‘청각사용자경험디자인(AUX·Auditory User Experience Design)’이다. 요즘 많은 기업이 강조하는 사용자경험(UX) 디자인의 한 분야다. 사운드 디자인의 시작은 징글(jingle·광고에 쓰이는 짧은 음악)이었다. 현재는 삼성전자 갤럭시의 공식 벨 소리 ‘오버 더 호라이즌’, 현대자동차의 웰컴 사운드 및 방향 지시등 소리, 인공지능(AI) 스피커의 음성 등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에 사운드 디자인이 적용되고 있다.
남궁 교수는 “넷플릭스의 ‘두둥’ 하는 굉장히 짧은 오프닝 사운드만 들어도 ‘저 사람이 넷플릭스를 보고 있구나’라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사운드 디자인의 브랜드 각인 효과는 강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청각 디자인은 시각 디자인에 비해 공간적인 제약이 없고 투입 비용 대비 효과도 훨씬 크다”며 “역사가 오래된 시각 디자인은 상향 평준화가 돼 제품별로 큰 차이를 못 느끼지만 청각 디자인은 이제 막 태동 단계라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도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남궁 교수가 사운드 디자인에 눈을 뜬 것은 삼성전자에서 관련 업무를 맡으면서부터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영화 음악 작곡가, 가수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그에게 삼성전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그렇게 2010년부터 약 6년 동안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에서 청각 경험 디자이너로 일했다. 당시 그가 맡은 업무는 삼성전자 TV의 브랜드 사운드를 만들고 사용자와 대화로 소통하는 인터랙티브 TV의 음성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남궁 교수는 “삼성전자 TV가 전 세계에서 팔리는 만큼 총 13개 언어가 필요해 13개국에 모두 출장을 가서 해당 언어에 어울리는 음성을 디자인하는 작업을 2년 넘게 했다”며 “삼성 TV의 보이스 페르소나(기업이 고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미지)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캐주얼한 말투를 선호하는 반면 중국 소비자들은 딱딱한 말투를 좋아하는 등 나라마다 선호하는 말투가 달랐다”며 “사운드 디자인을 하려면 각 나라의 문화와 분위기, 역사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사운드 디자인 분야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하고 싶어 삼성전자를 나온 남궁 교수는 국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청각 경험 디자인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헬스케어 그룹 바디프랜드의 브랜드 사운드를 제작해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히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본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남궁 교수는 “처음 학계로 왔을 때는 궁금한 것을 물어볼 동료나 선후배도 없는 상태였지만 지금은 이 길을 걷겠다는 후배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며 “사운드 디자인은 아직 미개척 분야인 만큼 자신이 하는 연구가 세계 최초의 연구가 될 수도 있는 매력적인 학문”이라고 소개했다.
요즘 남궁 교수가 관심을 두는 분야는 소리를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자원으로 접근하는 ‘사운드스케이프(소리와 풍경의 합성어)’다. 그는 “도시 재생을 할 때 그 도시만의 소리, 지역에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 좋은 경험으로 느끼는 소리들을 찾아내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앞으로 사운드 디자인은 비즈니스 분야를 넘어 인간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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