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자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무보험예금 때문에 중견 은행의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위기가 반복되자 미 금융 당국이 기업 결제계좌의 예금자 보호 한도를 상향하는 방안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덩치가 큰 기업 계좌의 예금자 보호 한도를 크게 높여 은행 위기 시 급속한 예금 이탈을 방지하고 기업의 자금 운용 부담도 덜겠다는 취지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1일(현지 시간) 미국 내 3개 은행 파산에 대한 후속 조치 보고서에서 이 같은 방안을 의회 등에 권고했다고 CNN 등이 전했다.
FDIC에 따르면 현재 미국 은행의 예금은 예금주가 누구냐에 관계 없이 계좌당 25만 달러까지만 보호한다.
실리콘밸리은행(SVB)·시그니처은행·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 올해 문을 닫은 은행들은 모두 무보험예금의 비중이 높았으며 은행 위기와 함께 예금 이탈이 매우 급속하게 이뤄졌다. 지난해 말 현재 미국의 무보험예금 규모는 전체의 약 43%인 7조 7000억 달러로 추산된다. 마틴 그루엔버그 FDIC 회장은 “무보험예금이 증가해 은행 시스템이 뱅크런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FDIC는 여러 은행에 예금을 나눠 예치할 수 있는 부유한 개인들과 달리 기업들은 급여 및 운영 자금을 한 은행에 많이 예치해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은행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기업들의 자금 운용 리스크가 커지며 기업들이 예금을 인출하면 은행 위기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SVB 파산 과정에서도 예금주인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직원들의 급여를 제때 지급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고조됐다. 미 금융 당국이 ‘시스템적 위험 예외 조치’를 발동해 SVB와 시그니처은행의 무보험예금을 전액 보장한 것도 은행 위기가 기업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FDIC는 이에 따라 기업 계좌에 대한 ‘맞춤형’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모든 은행 계좌에 대한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 △무제한 예금자 보호 등을 검토했으나 이 방안들은 결점이 많았다는 것이 FDIC의 설명이다. 특히 무제한 예금자 보호는 광범위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만만치 않았다.
다만 기업 계좌의 예금자 보호 한도를 얼마나 상향할지와 관련해 FDIC는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지 않았다. 보호 한도를 높이면 은행들이 FDIC에 납부해야 하는 보험료가 인상될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할 수 있다고 FDIC는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SVB 사태 당시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새 (예금자 보호) 한도를 200만 달러, 500만 달러, 1000만 달러 등 어떻게 정해야 할지가 문제”라며 “상한선 설정이 핵심”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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