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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를 품은 정의선의 용기 있는 결단… "과거를 알고, 미래를 그리자" [biz-플러스]

현대차, 伊 밀라노 '현대 리유니온' 행사 개최

반세기만에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전시 주목

포니는 현대차의 역사인 동시에 불편한 과거

정의선 "정주영·세영·몽구 회장님과 우리 모두 노력"

"다같이 노력한 좋은 기억 공유하고 발전 시켜야"

정의선(오른쪽) 현대차그룹 회장이 18일 이탈리아 레이크 코모에서 열린 ‘현대 리뉴이온’ 행사에서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차량을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포니는 현대자동차의 역사 그 자체다.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포니 쿠페 콘셉트와 양산형 포니 모델이 동시에 전시된 일은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도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두 모델은 당시 자동차 산업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가 해외에 자동차를 수출하겠다며 개발한 전략 차종이었기 때문이다. 선진국 시장을 겨냥한 스포츠카를 표방하며 실제 양산 직전까지 갔던 포니 쿠페는 1979년 석유파동에 따른 경영악화와 홍수라는 자연재해로 설계도면과 차량이 유실되는 바람에 해외수출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양산형 포니는 1976년 출시 이후 1985년 단종되기까지 국내 1위 모델을 수성하며 자동차를 대한민국 주력 수출 품목으로 성장시키는데 일조했다.

‘포니’를 품은 정의선의 결단…"과거를 알고, 미래를 준비"


그럼에도 포니는 오늘날 현대차(005380)그룹에 늘 아픈 손가락이었다. 포니의 역사를 강조하면 할수록 그룹의 적통 논란이 뒤따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고(故) 정주영 선대 회장은 1967년 현대자동차를 설립했지만 이후 경영을 셋째 동생인 고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에게 맡겼다. 1998년 정주영 선대 회장이 정몽구 명예회장에게 현대차그룹 회장을 넘기기 전까지 현대차의 성장 스토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정 전 명예회장이다. 실제 1970년대 초반 미국 포드와의 합작을 주도한 것도, 모두의 예상을 깨고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 포니 모델 2종을 출품한 것도 그의 지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포니정’이란 별명도 그의 성을 딴 것이다.

‘포니정’ 으로 불렸던 고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연합뉴스


그런 면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지난 18일(현지시간) 발언은 업계에서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불편한 과거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룹의 발전을 위한 토대로 삼겠다는 용기 있는 결단이라는 평가가 많다. 정 회장은 이탈리아 레이크코모에서 열린 ‘현대 리유니온' 행사에서 국내외 취재진들의 껄끄러울 수 있는 질문에 소신있게 답했다. 그는 ‘포니라는 차가 역사 속에 이렇게 같이 들어오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운데 모든 걸 다 포용하고 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나’는 질의에 “다 같이 노력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같이 공유하고 우리가 더 발전시키도록 해야 된다”고 말했다.

정의선(왼쪽) 현대차그룹 회장과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포니 쿠페 복원 차량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정 회장은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생각도 밝혔다. 그는 “현대차의 역사가 이제 50년 거의 됐다”면서 “현대차가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지만, 과거를 정리하고 알면서 다시 미래를 생각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내부적으로 많이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주영 선대회장님, 정세영 회장님, 정몽구 명예회장님, 그리고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오늘 날 우리가 있는 게 아닐까요”라고 반문하며 “우리 내부에서도 사실 노력했었다는 그런 좋은 기억,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또 그것을 바탕으로 또 계속 새롭게 해 나가야 되기 때문에 저희 직원들한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도 했다.

개발을 결심한 뒤 포니 출시까지 3년


현대자동차는 1973년 3월 독자적인 자동차 생산을 경영 방침으로 결정했다. 합작 상대였던 미국의 포드가 자본금 납입을 미루고 주요 부품 국산화 약속도 지키지 않은 게 결정적이었다. 제조업 기반이 없는 개발도상국 한국에서 자동차 개발 경험이 전무한 현대차가 고유 모델을 개발한다는 계획에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했다. 많은 자동차 전문가가 당시 “현대차가 고유 모델을 개발하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져라”라며 비웃었다는 이야기는 이 계획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일화다.

1975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포니 1호차가 생산되고 있다. 사진 제공=아산정주영닷컴


현대차는 우여곡절 끝에 포니 개발에 성공했고 울산에 완성차 공장을 준공하며 1975년 12월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이듬해 1월 26일부터 계약을 받기 시작한 포니는 2월 29일부터 고객에게 출고됐다. 불과 3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정주영 선대 회장은 1970년대 열악한 산업 환경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심지어 항공기까지 무엇이든 생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독자적인 한국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실현했다”며 선대 회장의 업적을 기렸다.

‘포니’로 아홉 번째 대량생산 모델 국가 등극…60개국에 수출


포니가 고유 모델로 조명을 받은 것은 ‘대량 생산 체계’에서 개발되고 양산된 첫 ‘국산 고유 모델’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량 생산이 가능한 자국 브랜드의 고유 모델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당시 한국은 기존 8개 자동차 공업국(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독일, 일본, 스웨덴, 체코)에 이어 9번째 고유 모델 출시 국가인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 국가들은 고유 모델을 수출한 ‘글로벌 모델’ 생산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고유 모델은 브랜드가 수출에 대한 의사 결정을 자주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현대자동차 최초의 수출 자동차 포니가 1976년 6월 에콰도르 콰야길의 항구에 하선되고 있다. 사진 제공=현대차


포니는 해외 수출을 목표로 개발된 차였다. 국내 첫 출고 시점보다 보름 정도 이른 1976년 2월 중순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현대건설에 포니 15대를 시험 수출했다. 같은 해 7월 에콰도르에 포니 5대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중동·중남미·아프리카 등지에 1019대의 포니와 포니 픽업이 수출됐다. 1977년에는 7427대를 30개국에 수출했고 1978년에는 1만 8317대를 40개국에 수출했다. 수출 지역도 중남미·중동·아프리카·아시아·유럽 등으로 확대됐다. 현대차의 수출 성과에 고무된 정부는 1979년 자동차 산업을 10대 수출 전략산업으로 선정한다. 이후 1982년 7월 포니는 단일 차종으로는 국내 최초로 누적 생산 30만 대를 돌파했다. 당시 수출 대상국은 약 60개국에 달했다.

포니를 통해 해외 수출 시장의 길을 닦은 현대차는 1985년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 진출하고 그해 세계 각지에 포니, 스텔라, 포니 엑셀, 프레스토 등의 다양한 모델을 수출해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게 된다.

출시 첫해 국내 점유율 44%…자동차 부품 국산화 주도


포니는 국내에서 개발돼 한국인의 체격과 도로 사정에 적합했고 조립 생산차보다 내구성이 좋으면서도 경제적인 것이 강점이었다. 포니는 국내에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포니가 출시된 1976년 당시 국내 승용차 판매 대수는 총 2만 4618대였는데 포니 단일 모델이 그해 1만 726대 판매되면서 44%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포니2가 출시된 1982년에는 국내 승용차 판매 점유율의 67%(포니1·2 합산 기준)를 차지하기도 했다. 고도성장기인 1980년대에 포니는 국내 승용차 시장의 성장을 주도했 ‘마이카’ 시대를 여는 핵심 주역이 됐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85년 현대차 포니엑셀 신차 발표회에서 포니엑셀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제공=아산정주영닷컴


포니의 주요 인기 요인 중 하나는 높은 부품 국산화율이다. 당시 조립 방식으로 생산된 차는 자주 고장 났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부품이 수입품이라 수리비가 비싸고 작업도 오래 걸렸다. 반면 포니는 부품 대부분을 국내에서 생산한 덕분에 수리가 빠르고 비용도 저렴했다. 또한 최신 시설에서 생산한 국산 부품을 통해 품질 수준을 끌어올리며 낮은 내구성으로 비판받던 현대차의 품질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포니 부품 국산화의 진정한 의의는 국내 부품 업체 발굴과 계열화를 통해 국내 자동차 공업 발전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데 있다. 포니는 당시 국내 기술 수준으로는 제작이 어렵거나 시장성이 낮은 일부 품목만 수입에 의존했고 90% 이상의 부품을 자체 제작하거나 국내 부품 업체를 통해 생산했다. 이후 포니2는 최대 98%의 국산화율을 달성했다. 이와 같은 부품 국산화 노력은 국내 자동차의 전후방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포니 쿠페 콘셉트, 고성능 'N 비전 74'에 계승


포니 쿠페 콘셉트는 현대자동차의 역사에서 결코 잊혀질 수 없는 모델이다. 현대차가 첫 독자 생산 모델인 포니와 함께 토리노 모터쇼에서 선보인 포니 쿠페 콘셉트는 쐐기 모양의 노즈와 원형의 헤드램프, 종이접기를 연상케 하는 기하학적 선으로 공개 당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실내 공간은 운전자 중심으로 설계된 대시보드가 어느 차에서도 보지 못했던 독특한 레이아웃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대시보드와 실내 트림 색상을 분리해 지금 보아도 세련된 감성을 선사하고 있다. 포니 쿠페 콘셉트에는 오늘날 현대차가 고성능 수소전기차 분야를 개척하고 전기차 시장에서의 선도적인 행보를 이어가는데 큰 경험적 자산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현대차의 고성능 수소전기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N 비전 74’. 사진제공=현대차


특히 지난해 7월 처음 공개돼 글로벌 미디어와 고객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고성능 수소 하이브리드 롤링랩(Rolling Lab) ‘N 비전 74’는 포니 쿠페 콘셉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됐다. 현대차는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모델과 함께 포니 쿠페 콘셉트의 정신을 이은 N 비전 74를 나란히 전시하며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현대차의 기술과 디자인적 혁신 및 도전 정신을 선보였다. 현대차는 N 비전 74를 전 세계에서 선보이고자 레이크 코모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클래식카·콘셉트카 전시회 ‘콩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에 최초로 출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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