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모(35) 씨는 15개월 된 딸을 집에 홀로 남겨둔 채 상습적으로 외출했다. 딸이 고열에 시달리고 구토해도 병원을 찾지 않았다. 결국 서 씨의 딸은 지난해 12월 목숨을 잃었다. 서 씨는 남편과 함께 딸의 시신을 김치통에 넣어 유기했다. 부부는 딸이 사망한 이후에도 양육수당을 받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6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아동방임 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가운데 아동방임과 관련된 조문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호하게 설정된 조문 탓에 일선 경찰과 아동보호기관들이 학대 아동에 대한 긴급 조치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아동방임 범죄가 신체적인 학대와 달리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가 없는 만큼 상대적으로 사소한 아동방임의 경우에도 과태료 처분 등을 통해 시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동복지법 17조 제6호에 따르면 아동방임은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행위’로 규정돼 있다. 문제는 ‘기본적’ ‘소홀히’라는 조문이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가정마다 경제적 수준과 양육 태도가 다른 만큼 어느 정도가 ‘기본적’이며 ‘소홀한’ 행위인지 일선 경찰관이 판단할 수 없어 현장 조치가 모호해지는 경우가 많다.
김병수 동의과학대 교수는 “형법상 범죄의 구성요건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국민이 예측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법률에 규정해야 하지만 방임행위의 경우 통일된 기준이 없다”며 “‘정인이 사건’에서 현장에 세 번이나 출동한 경찰이 골든타임을 놓친 원인이며 지속적으로 아동방임 범죄가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아동방임 범죄는 2017년 2787건, 2018년 2604건, 2019년 2885건, 2020년 2737건, 2021년 2793건으로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아동학대 사망 중 두 번째로 많은 유형으로 지난해 방임으로 아동을 사망하게 한 가해자만 16명(29.6%)에 이른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한국 사회에서는 방임이라는 말 자체를 상당히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방임 아동의 대부분이 후천적 발달장애 등 심각한 휴유증을 앓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방임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유형을 아동복지법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열거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임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함은 물론 초기 사소한 방임의 경우에도 과태료 처분을 내려 아동방임을 예방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훈육 목적 여부, 아동연령, 전과 유무, 사안의 중대성을 종합해 점수화함으로써 경찰의 개입 기준을 분명히 하자는 방안도 내놓았다. 김 교수는 “방임의 지속 시간 등 기준은 학계 및 실무자들의 논의를 거칠 필요가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현재 모호하게 설정된 기준을 변경하고 현장에서 긴급한 조치가 가능하도록 조문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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