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 정상이 8일(현지 시간)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에 맞서 미영 동맹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기로 합의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Brexit) 이후 소원했던 ‘전통의 우방’ 미영 관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도전으로 인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을 배격할 ‘대서양 선언’을 채택했다. 양 정상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과 파괴적 기술, 기후변화에 양국이 공동 대응할 것”이라며 “미국과 영국은 항상 함께 이룰 수 있는 경계를 확장해왔다”고 밝혔다.
이번 대서양 선언에 따라 미영 양국은 영국에서 생산되는 핵심 광물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핵심 광물 협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양국 간 핵심 광물 협정이 체결되면 영국에서 채굴·가공된 광물을 사용한 전기차 역시 미국의 IRA 세액공제 대상이 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재규어와 랜드로버 등 영국 자동차 업체들의 전기차도 IRA에 따른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은 이미 유사한 광물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울러 영국의 방위산업 물품을 미국 국내용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의회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백악관은 전했다. 영국의 방산 기업을 사실상 미국 기업과 동일하게 취급하겠다는 취지다. 이 조치는 극초음속 무기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된 바 있다고 영국 정부 측은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일원인 호주에 대해서도 국방물자생산법(DPA)상 국내 기업으로 추가할 것을 의회에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양국은 다만 대서양 선언으로도 브렉시트 이후 논의됐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이번 대서양 선언은 중국 견제를 위해 유럽 내에서 확실한 ‘우군’을 확보하려는 미국과 브렉시트 이후 외교적 입지를 고민해온 영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물로 보인다. 수낵 총리는 “미국과 영국이 같은 곳에 서 있을 때 세계는 더욱 안전하고 더 많이 번영할 수 있다”며 “(대서양 선언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협정”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번 합의에 대해 “엄청난 힘의 원천”이라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의 최전선에 머무르기 위해 우리의 파트너십을 계속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 기술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내가 왜 특정 기술 능력을 (중국에) 이전하지 않는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논의한 바 있다. 나는 ‘중국이 대량살상무기(WMD)와 정보 개입에 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진행된 미중정상회담의 일화를 전하며 미국의 대중국 견제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특정 유형의 아웃바운드(대외) 투자가 야기하는 국가 안보적인 위험에 대해서도 대응해야 한다”면서 중국 첨단 기술 기업에 대한 미국 기업의 투자가 조만간 제한될 것임을 시사했다.
수낵 총리도 이날 회견에서 “우리는 국가 안보는 물론 번영을 좌우하는 경제 안보를 위해서도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러시아와 같은 국가는 우리의 개방성을 조작·악용하고 지식재산권을 탈취하고 권위주의적 목적을 위해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들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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