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 아파트뿐 아니라 시공 중이거나 준공된 민간 아파트 293곳에 대한 안전점검에 돌입한 데는 무량판 공법이 확대 적용되고 있는 만큼 주민들의 주거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특히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개한 무량판 공법이 적용된 철근 누락 아파트 15곳에 대한 조사 결과 일부 단지의 경우 지하주차장 기둥에 들어가야 할 철근 보강이 전 구간에서 누락되면서 사태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양주회천A15구역의 경우 지하주차장 154개 기둥에 철근 보강이 모두 빠져 있었다. 정부는 이 같은 부실 시공이 건설 업계에 만연한 이권 카르텔에서 기인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권혁진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은 “무량판 공법이 적용돼 시공 중인 105곳, 2017년 이후 완공된 188곳에 대해 안전점검을 실시할 계획”이라며 “주민들이 추천하는 안전진단 전문 기관을 통해 안전점검을 진행할 예정이며 점검 결과 LH의 사례처럼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즉시 안전진단을 실시해 보수·보강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하주차장뿐 아니라 지상 단지가 무량판 공법으로 시공된 곳도 대상이다. 민간 아파트의 경우 지하주차장 외 지상 단지도 무량판 공법을 적용한 사례가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진단 비용은 아파트를 시공한 건설사가 부담하는 것을 전제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무량판 구조는 상부의 무게를 떠받치는 보나 벽 없이 기둥이 슬래브(콘크리트 천장)를 바로 지지한다. 상부의 충격이 바로 벽으로 전달돼 층간소음이 심한 기존의 벽식 구조(내력벽이 천장을 받치는 구조)와 달리 소음이 기둥을 통해 빠져나가 층간소음이 덜하다. 보가 없기 때문에 땅을 덜 파도 돼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에 과거에는 고층 상업용 빌딩에 주로 적용됐으나 최근에는 층간소음이나 내구성 등을 인정받아 주상복합이나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건설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LH는 2017년부터 발주한 아파트에 이 공법을 적용해왔다.
다만 기둥에 하중이 집중되기 때문에 기둥 주변에 전단 보강근을 단단히 설치해야 하는데 이번에 적발된 LH의 아파트에서는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설계 단계부터 철근 보강이 빠진 것인지, 설계는 제대로 했는데 시공 과정에서 누락된 것인지를 두고 여전히 LH와 시공사 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철근 누락이 확인된 LH 아파트들의 입주민과 예비 입주 예정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들은 구체적인 대책 마련 및 보상 계획을 요구하며 집단 행동에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이번에 보강 철근 누락이 확인된 경기도 남양주별내A25구역 단지 입주자들은 LH와 시공사·감리단 등을 참석시켜 입주자 설명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입주자대표회는 추후 임시비상대책위원회를 설립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요구안을 내놓기로 했다. 단지의 한 입주민은 “보강 방안도 중요하지만 ‘순살 아파트’ 이미지가 굳어지면 아파트 값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며 “광주 아이파크나 검단신도시처럼 추가 보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LH가 또다시 심판대에 올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올 4월 발생한 인천 검단 신축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의 원인은 LH의 ‘전관 특혜’와 관련이 있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한다고 밝혔다. LH 출신을 영입한 건설 업체, 설계 업체들이 그간 사업 수주 과정에서 혜택을 받았고 LH가 이들의 부실한 업무 처리를 방치하면서 붕괴 사고까지 발생했다는 게 경실련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LH 측은 입장문을 내고 “경실련의 공익감사 청구를 적극 수용하고 감사원 조사에도 협조하겠다”며 “비위 사실이 확인되면 수사기관에 고발 조치하는 등 강력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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