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미중 관세전쟁 등의 여파로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하루 새 장중 변동 폭이 50원에 달하는 것은 물론 역외시장에서는 달러당 1372원 까지 하락(원화 강세), 20여 일 만에 100원가량 급락해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으로 달러당 1370원대까지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미중 관세 협상 진전 기대로 환율이 일시적으로 하락했지만 국내외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 당분간 큰 폭으로 출렁이는 장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5일(현지 시간) 뉴욕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달러·원 1개월물은 1372.9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8일 1483.4원까지 치솟았던 NDF 종가는 이후 1410~1440원대에서 등락하다 이달 2일 1390원대로 내려온 뒤 1370원 수준까지 급락했다. 국내 연휴였던 이 기간 서울 외환시장은 개장하지 않았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널뛰기를 하고 있다. 지난달 9일 1484.1원까지 치솟아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가 이달 2일 1405.3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특히 2일 하루 동안(주간·야간 전체) 환율은 장중 1440.0원까지 치솟다가 1391.5원까지 떨어져 변동 폭이 무려 48.5원에 달했다. 이는 서울 외환시장에서 야간 거래가 시작된 지난해 7월 이후 최대다.
지난달 초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방침에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미중 통상 협상 진전 기대감에 최근 환율이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기에 대만달러 가치 급상승까지 환율 하락에 기름을 부었다. 대만 정부가 미국과의 무역협정 체결을 위해 자국 통화의 강세를 용인할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에 퍼지면서 대만달러 가치는 최근 2거래일 동안 9% 넘게 절상됐다. 최근 30년 새 최대 절상 폭이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만의 TSMC 등 주요 기술주가 한국의 삼성전자와 묶이듯 대만달러와 원화는 피어 통화(동등 통화)로 보기 때문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대만 생명 보험사의 환 헤지 수요로 NDF에서 원화가 강세를 보인 것으로 외신들은 보고 있다. 대만 보험사 등은 자국의 외환시장이 작은 탓에 대만과 산업구조가 유사하고 유동성이 풍부한 원화 시장에서 외환 위험을 헤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원·달러 환율이 1300원 후반대에서 1400원 초반 사이에서 등락을 거듭하면서 변동성 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한다. 미중 협상 기대감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위원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통화가치 절상 압력에 놓일 수 있다는 기대를 선반영해 환율이 앞으로 더 떨어질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아직 협상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1300원대에 안착할지는 더 두고 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당분간 1300원대를 보이다가도 3분기 이후 달러 자산 수요 회복, 유로·위안화 롱스톱(매도 손절) 물량이 나오면서 강달러가 이어져 1400원대에 복귀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연내에 1300원대 초반에 이르는 등 하향 안정화할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연구원은 “국내 경기 부진이나 정국 불안이 원화 강세를 방해할 수 있지만 하반기부터 이런 요인이 해소되면 대외 요인을 반영해 중기적으로 1300원대로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권 연구원은 “올해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연내 금리를 세 번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등 경기 둔화에 대응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원화를 포함한 미국 밖 통화들이 동반 강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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