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금융 분야 공약은 크게 △코로나19 대출 종합대책 △폐업 등 금융 지원 확대 △중금리 인터넷은행 설립 등으로 요약된다. 코로나19 정책자금 대출의 경우 채무조정과 탕감을 단계적으로 지원하고 저금리 대환대출과 이차보전도 확대할 방침이다. 소상공인을 위한 맞춤형 장기분할 상환 계획도 준비한다. 특히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한 중금리 인터넷은행도 검토 중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공약도 큰 틀에서 비슷하다. 자영업 금융플랫폼 통합체계를 구축하고 생애 주기별 패키지 대출 지원과 기업 한도 대출 수수료를 폐지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소상공인 전문 국책은행도 약속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20년 이상 장기 미상환 채권을 포기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빚 탕감 논란을 키우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추가 대출 지원과 빚 탕감이 시장 원리를 해치고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선 주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정책대출 확대만 해도 이미 과도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2020년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소상공인·자영업자 정책금융을 급격히 늘렸다. 2019년 10조 7300억 원 수준이었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정책자금 지원과 지역신용보증재단의 신규 보증 공급액은 2020년 들어 27조 2900억 원으로 2.5배나 급증했다.
팬데믹에 따른 내수 침체를 방어하려는 취지였지만 후유증도 컸다. 저리의 정책금융이 무차별적으로 공급되면서 한계 자영업자를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는 수치로 입증된다. NICE평가정보에 따르면 개인사업자대출 차주 중 정책금융기관의 대출을 보유한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말에는 2.2%에 불과했지만 올해 2월에는 19.7%로 확대됐다. 대출을 쓴 자영업자 5명 중 1명꼴로 정책자금을 쓰고 있는 셈이다.
NICE평가정보는 정책자금 대출을 같이 받았을 때의 잠재부실률이 민간 개인사업자대출만 보유했을 때보다 10%포인트가량 높았다고 설명했다. 잠재부실률은 전체 채무자 중 30일 이상 연체한 차주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시장에서는 ‘정책자금 급증→민간 대출 심사 기능 약화→자영업 구조조정 지연→자영업 부실 심화→정책 지원 요구 확대’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자금은 시중은행 금리보다 현저히 낮아 지원 요구가 많다. 지난해 말 기준 지역신보 보증부 대출 금리는 4.25~6.03%로 시중은행 개인사업자 신용대출보다 1~5.5%포인트가량 낮았다.
이는 결국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 대선 후보들은 새출발기금 확대를 내세우고 있지만 지난해 기금의 당기순손실만 5638억 원에 달한다. 새출발기금은 채무 부담이 큰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대출채권을 정부가 매입해 원금을 일부 탕감하거나 이자를 낮춰주고 상환 기간을 늘려주는 제도다.
새출발기금 부실채권 매입 부담을 져야 하는 캠코의 재무 상태 역시 덩달아 나빠졌다. 캠코의 부채비율은 2021년 172.9%에서 지난해 213.7%로 급증했다. 지난달 말까지 새출발기금에 들어온 누적 채무조정 신청액은 20조 3173억 원에 달한다. 신청자만 해도 12만 5738명이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낮은 금리에 정책자금을 급격히 늘리면서 대출이 필요 없는 소상공인들도 빚을 내게 됐고 이에 따라 신용 부실 위험 역시 높아진 상태”라며 “정책금융을 줄이되 정책보증부 금리를 은행이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야 대선 후보들은 오히려 정책금융 확대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주장하는 주택담보대출 원금상환 유예 역시 가계부채의 질을 떨어뜨리고 대출 수요만 자극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청년을 대상으로 한 연 1.7% 금리의 저리대출도 전형적인 ‘복지대출’이라는 지적이 흘러나온다.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인 자영업 정책금융 확대보다는 민간 위주의 소상공인 여신 심사 강화와 구조조정이 더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와 소상공인의 부채가 누적되고 있어 무조건 정책자금을 푼다고 능사는 아닌 상황”이라며 "채무 탕감·조정 기준도 세밀하게 잘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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