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000660)가 한화세미텍과 한미반도체(042700)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용 TC 본더를 동시에 구매했다. HBM 제조 공급망 다변화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한편 최근 갈등이 극으로 치달았던 한미반도체와의 관계도 개선된 것으로 풀이된다.
16일 한화세미텍과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로부터 TC 본더를 수주했다고 공시했다. ‘듀얼 TC본더 그리핀’ 제품으로 전체 계약 규모는 한화세미텍 385억 원, 한미반도체 428억 1200만 원이다. 한화세미텍이 부가가치세(VAT)를 제외한 금액으로 공시한 점을 고려할 때 양사의 수주 금액은 대등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발주를 통해 두 회사가 공급하게 될 TC 본더는 25~30대 정도인 것으로 파악된다.
TC 본더는 여러 개의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SK하이닉스 HBM 제조 공정의 필수 장비다. 수직 적층 과정에서 SK하이닉스는 ‘매스리플로-몰디드언더필(MR-MUF)’이라는 공정을 통해 D램 사이를 일종의 접착제로 결합시킨다. 이 공정에 앞서 D램을 일정한 간격으로 쌓고 고정시키는 ‘초벌’ 가접합 작업이 필요한데 이 공정을 TC 본더가 맡는다.
지난해까지 SK하이닉스의 HBM 라인에는 압도적인 비율로 한미반도체의 TC 본더가 채워졌다. 하지만 올해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 장비 공급 퀄(승인)을 내면서 공급망 다변화를 시도했다. 3월 첫 수주 소식을 알렸던 한화세미텍은 이번 공시 전까지 15개가량의 장비에 대한 공급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SK하이닉스에 불만이 커진 한미반도체는 HBM 제조라인에 파견했던 유지보수(CS) 엔지니어들을 철수시켰고 양 사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발주를 통해 TC 본더 공급망 다변화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한미반도체와의 갈등을 봉합하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회사 내부에서는 SK하이닉스가 한미반도체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이번 발주는 물론 여러 회유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올해 SK하이닉스는 최대 80여 대의 TC 본더를 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회사가 약 40대의 TC 본더 구매를 결정한 가운데 업계는 향후 수주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올해 SK하이닉스의 TC 본더 수량은 한화세미텍과 한미반도체가 양분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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