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 난항을 겪고 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 외교가 갑작스레 빛을 발하고 있는 모양새다. 트럼프는 10일(현지 시간)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던 인도·파키스탄 분쟁을 중재하는 데 성공했다. 양국 모두 확전을 원하지 않았기에 트럼프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가 양국 간 직접 소통을 주선하고 상반된 입장을 조율하는 데 상당 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미국은 1979년 시리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며 제재를 단행했고, 2012년에는 외교관계를 완전히 단절했다. 그러나 13일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빈 방문 중 시리아에 대한 제재 해제를 전격 발표해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아메드 알샤라 시리아 대통령은 테러 조직을 주도했던 경력이 있으며 2013년 미국은 그를 테러리스트로 지정한 데 이어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지명수배했다. 그런 알샤라가 트럼프에게 광물 협정을 제안했고, 트럼프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중재도 중요했지만 트럼프의 결단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근 50년 동안 지속된 미국과 시리아의 적대관계를 트럼프가 ‘셀프’ 중재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는 1기 때부터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간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는데, 이는 2020년 아브라함 협정체결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순차적으로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모로코·수단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트럼프는 이번 중동순방에서도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사우디에 협정 참여를 강력히 촉구했고, 시리아에도 합류를 종용했다.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면 중동의 군사적 긴장은 상당히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아브라함 협정이 성공해도 지속 가능한 중동 평화를 위해 갈 길은 멀다. 이란과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중동 내 불안정 요소로 남아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이번 순방길에서 “나는 영원한 적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서 이란에도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최대 압박” 발언도 이어졌지만 이란에 올리브 가지를 내민 셈이다. 이란도 미국과 아랍국가들이 참여하는 핵농축 합작 벤처 설립을 제안하며 트럼프의 사업가적 본능을 자극했다. 이번 핵 협상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마지막 미국인 인질을 석방한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스라엘을 ‘패싱’하고 하마스와 직접 협상해 인질 석방을 성사시켰다.
트럼프는 사우디에서 “나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peacemaker)’이고 ‘통합하는 사람(unifier)’”이라고 했다. 그는 이전에도 미국 대통령으로서 국제분쟁의 종식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트럼프의 평화관은 이념과 가치를 중시했던 이전 미국 대통령들의 평화관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이라크가 민주화하고 민주주의가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면 지속 가능한 평화가 가능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2003년 그가 감행한 이라크 전쟁은 민주주의 국가 간에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민주 평화론’과 ‘네오콘’이 이념적 근거를 제공했다. 버락 오바마와 조 바이든 또한 국제분쟁을 가치와 명분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결하려 했다.
트럼프는 분쟁의 근본적 원인이나 명분에는 큰 관심이 없다. 트럼프 ‘피스메이킹’의 핵심은 경제이익이다. ‘서로 싸우지 않고 미국과 협력한다면 수많은 경제적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논리를 펼치며 ‘쇼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라는 상인의 관점에서 분쟁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기조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분쟁 그리고 시리아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났다. 인도와 파키스탄에는 분쟁을 지속할 경우 미국과의 무역 기회를 박탈하겠다며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이런 피스메이킹 과정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이스라엘과 같은 핵심 우방도 패싱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트럼프의 시선은 조만간 북한으로 향할 것이다. 한국은 트럼프의 대북 피스메이킹에 준비되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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