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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의절하고 파혼…공황장애 걸려 운전대도 못 잡아" [사기에 멍든 대한민국]

<2> 무너진 삶과 가족-피해자 7명 심층 인터뷰

리딩방 일당 꼬드김에 전재산 잃고

SNS서 만난 사람에 돈 뜯기기도

빚더미 떠안고 알바로 생계유지

생활고에 수면장애·우울증 시달려

"아무도 못 믿게 된게 가장 힘들어"

이미지투데이




“사기를 당하고 난 후 형과 어머니로부터 의절 당했어요. 아버지도 예전에 꽤 큰 돈을 사기 당하셨는데 저까지 이렇게 되니 가족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리딩방 사기 피해자인 30대 남성 김 모 씨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가족이 그렇게 투자를 말렸는데도 당시에는 눈이 돌아 말을 듣지 않았다”며 담담한 목소리로 피해 후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가 날린 금액은 개인 자산 1억 3000만 원에 더해 가족 돈 8000만 원, 연 이자율 17%의 카드 단기 대출 3000만 원까지 총 2억 3000만 원. ‘급등주 정보를 준다’는 리딩방 일당의 꼬드김에 넘어가 사설 거래소에 거액을 넣었지만 알고 보니 숫자 하나하나 다 조작된 사기 사이트였다. 김 씨는 “사기를 당한 후 사업도 접었고 상견례까지 마친 여자친구와도 차마 결혼할 수 없어 일방적으로 파혼을 통보했다”며 “나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잘 모르겠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갈수록 교묘해지고 기업화되는 사기 범죄 앞에 피해자들의 삶은 속절 없이 무너지고 있다. 본지는 사기 이후 피해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실태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다양한 연령과 직업군의 피해자 일곱 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사기를 당하게 된 사연과 피해 금액은 제각각이었지만 한순간의 유혹에 넘어간 대가는 비슷하게 처참했다.

우선 피해자 일곱 명 모두 모은 재산을 대부분 날린 것은 물론 빚더미까지 떠안게 돼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밤낮으로 쿠팡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정 모 씨는 “버는 족족 이자로 나가니까 내 돈 같지가 않다”며 “직장에 들어가려고 해도 마음 잡기가 어려워서 단기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공모주 사기에 6000만 원가량을 날린 주부 나 모(46) 씨도 “피해금 절반은 카드론 대출로 마련했다”며 “이자가 연 12% 수준이라 체감상 8000만~9000만 원은 날린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탄했다.



건강 문제로 일을 할 수 없어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놓인 경우도 있었다. 제조 업체에서 관리자로 일하던 60대 남성 정 모 씨는 올해 초 갑자기 뇌경색이 발병하면서 퇴직하게 됐다. 더 이상 육체노동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병원 입원 중 부업 거리를 찾다가 우연히 급등주 광고를 보게 됐고 그 길로 퇴직금 1억 3000만 원을 몽땅 날렸다. 정 씨는 “노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퇴직금에 보험금까지 털어 투자했지만 한 푼도 남지 않았다”며 “당장 병원비조차 없어 조만간 강제로 퇴원해야 할 처지인데 가족한테는 아직까지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활고도 힘들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심리적 고통으로 인한 ‘홧병’이다. 실제 일곱 명 모두 사기 피해 이후 중증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는 수면 장애,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약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리딩방 사기로 3억 5000만 원을 날린 40대 여성 김 모 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 씨는 지난해 초 명예퇴직 후 주식 공부를 하기 위해 네이버 밴드를 뒤져보다 한 스터디그룹에 가입했다. 육아휴직 기간을 제외하고 20년 넘게 은행에 다녔던 만큼 사기를 당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지만 불과 한 달여 만에 밴드는 소리 소문 없이 폭파됐고 3억 5000만 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김 씨는 “사기 피해 이후 공황장애가 너무 심해져서 교통사고만 1년간 서너 번 냈다. 가만히 있어도 누가 날 찌르는 것 같은 기분”이라며 “돈도 돈이지만 세상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게 가장 힘들다”고 호소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알게 된 여성으로부터 7400만 원을 뜯겼다는 40대 주부 이 모 씨도 “사기를 당한 후 그 여자 계정은 온데간데없이 폭파됐다”며 “그때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직 같이 나눴던 대화 내역은 남아 있어서 종종 들여다보는데 여전히 믿기 힘들다”고 했다.

피해자들의 삶은 처참할 만큼 붕괴되고 있지만 사기꾼 검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검거된 보이스피싱 사기 피의자 6218명 중 조직의 대표 혹은 임원 격인 상선은 70명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2만 1833명 중 420명이 상선이었다. 반면 피해 금액 환수가 어려운 하부 조직원이 3617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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