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기업에 약 430조 원을 투자하고 있는 ‘큰 손’ 국민연금이 글로벌 의결권 행사에 대해서는 실효성이나 사회적 중요성을 감안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사 연임 기준을 전문성보다는 근속 년수를 기준으로 삼고,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도 기존 정책으로 충분하다는 이유로 기계적으로 반대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2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이달 해외기업 18곳의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했다. 아마존과 버크셔 해서웨이, 텐센트, 존슨앤존슨 등 주요 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 세부기준 33조를 근거로 들어 주요 기업 이사 선임에 반대했다. 아마존의 패트리샤 Q. 스톤서퍼와 버크셔 해서웨이의 샬럿 가이먼, 텐센트의 리동셩 등이 대상이다. 국민연금은 원칙적으로 10년 이상 장기 연임 시 반대하게 돼 있는데, 글로벌 자문기관이나 연기금들이 전문성과 경영 성과 등을 고려한다는 점과 비교된다. 세 곳 회사의 이사들은 ISS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 기관과 연기금의 찬성 의견을 얻고 연임에 성공했다.
안건 내용의 실효성을 보지 않고 ‘기존 정책으로 충분하다’는 등의 이유로 일괄적으로 반대하는 점이 아쉽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연금은 아마존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라온 ‘인공지능(AI) 감독 관련 지배구조 평가 요청’ 주주제안 등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했다. 해당 안건은 아마존 측의 반대로 부결되기는 했지만, ISS와 글래스루이스 등 자문 기관의 찬성을 얻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기금의 35.5%에 해당하는 약 431조 원을 해외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해외 주식에 대한 ‘기업과의 대화’ 주주활동에 대해서는 최근 용역기관 선정 공고를 내는 등 전문성을 확충하려 하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는 만큼, 글로벌 기업들에 의결권을 행사할 때도 보다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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