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 전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바이오필리아’에서 자연과 연결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녹색 갈증’이라 정의했다.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은 현대인들의 마음이 마치 갈증처럼 간절하게 느껴진다는 의미다.
최근 들어 치유농업이 주목받고 있다. 동식물, 농촌 경관, 전통문화와 먹거리 등 농업·농촌이 가진 유무형 자원을 이용해 국민의 신체적·심리적·사회적 건강의 회복과 증진을 도모하는 것이 치유농업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경쟁 사회 속에서 현대인들은 농촌의 다채로운 풍경, 꾸미지 않은 맛과 멋에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부드러운 흙을 만지며 파란 하늘 아래 볼을 스치는 산들바람에서 자연이 주는 위로를 받는다.
중세 유럽에서 시작된 치유농업은 국가별 여건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영국은 국가치유농업연구소 주도로 의료·사회·농장·보호관찰 서비스를 제공한다. 독일은 의료보험과 연계한 공공의료 시스템인 ‘크나이프’로 발전했다. 1994년 농촌진흥청의 원예 치료 프로그램 연구로 시작된 우리나라 치유농업은 2020년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치유농업의 의과학적 효능도 우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령자 신체 능력 개선을 위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의 인지 기능이 22% 향상되고, 발달장애인의 활동 능력 향상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참가자의 공격성 등 문제행동이 15% 감소했다. 정신 건강 관리 프로그램에서는 성인 참가자의 우울감이 33% 감소했다고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관리 치유농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방관 A 씨는 “흙을 느끼고 식물을 키우면서 사고 현장의 참혹한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치유농업은 신체·정신 건강 증진, 사회적 관계 회복에 기여하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 실현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치유농업 콘텐츠 개발·확산과 사업 모델 육성을 위해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 종합계획’을 수립, 매년 시행 계획을 마련해 전략 과제를 추진 중이다. 국민 누구나 치유농업을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중앙과 광역 단위 거점 기관을 조성한다. 중앙 기관인 ‘치유농업확산센터’는 내년 경남 김해시에 준공된다. 광역 단위로는 12개소에 ‘치유농업센터’가 운영 중인데 2027년까지 17개소로 확대할 계획이다.
도시민의 치유농업 서비스 접근성도 높여 나간다. 현재 이천시·창원시·충주시 3곳에 설치된 ‘치유농업쉼터’를 확대하고 전국 552개소 ‘치유농장’은 내년까지 800개소 이상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치유농업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우수 치유농업시설 인증제’를 올해 하반기에 시행할 예정이다. 치유농업 프로그램의 개발·보급도 강화한다. 이미 의학적 효과가 검증된 맞춤형 프로그램(10종)은 빠르게 확산하고 다양한 치유농업 자원의 발굴과 생애 주기별 건강 증진 맞춤형 프로그램 및 사업 모델 개발 연구도 강화할 예정이다. 또 교육부와 협력해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는 초등학교 ‘늘봄학교’ 수를 올해 157개 학교(315개 학급)에서 2027년까지 학급 수를 1000개까지 늘려갈 계획이다.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당신, 잠시 걸음을 늦춰 자신에게 힐링할 시간을 주는 것도 괜찮아요.” 치열한 경쟁으로 힘들어하는 현대인에게 치유농업이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이번 주말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치유 농장으로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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