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말부터 민간 아파트에 적용되는 제로에너지건축물(ZEB) 5등급 의무화 제도로 인해 전용 84㎡의 건설 비용이 가구당 600만 원 가량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ZEB 5등급을 충족하기 위해선 고성능 단열재와, 태양광 설비 등 고가의 건설 자재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시공 난이도도 올라가 경험이 없는 중소형 건설사의 경우 체감 공사비 상승은 더 높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1000㎡ 이상 민간 건축물과 30가구 이상 민간 공동주택에 ZEB 5등급 수준 설계를 의무화하기 위한 규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당초 정부는 이 제도를 작년 초 시행하려 했으나 원자잿값,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가 오르는 상황에서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까지 더해지면 분양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업계 의견을 반영해 시행을 1년 6개월 유예했고 도래하는 시점이 다음 달 30일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여전히 업계에서는 우려하는 시각이 크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고 재유예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ZEB 5등급 수준 설계를 의무화가 도입되면 에너지 자립률 13~17%를 맞춰야 한다. 에너지 자립률은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소비량으로 나눈 값이다. 즉 아파트 전력 소비량 중 13~17%를 태양광 설비 등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생산해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선 건물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고 열 손실 등을 줄이기 위해서 실내 공기가 밖으로 새는 것을 최소화 하는 기밀 성능의 고급 자재도 써야 한다. 이에 정부는 5등급 수준을 충족하려면 주택 건설비용이 가구당 약 130만원(84㎡기준) 높아질 것으로 추정했는데, 건설사는 정부 추산치가 과소 추계 됐다는 입장이다. 건설사들은 정부가 추산한 추가 비용 보다 4~5배(520만원~650만원)로 비용 상승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계산한 것은 단순 자재비 위주의 계산으로 보인다”며 “시공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용적률이 높은 고층빌딩의 경우 옥상 태양열 면적이 상대적으로 줄어들다 보니 벽면에 건물일체형 태양광설비(BIPV) 패널 등을 붙여야하는데, 이는 시공 난이도가 높아 비용이 급증한다. 또 다른 건설 업계 관계자도 “건물 외장재로 활용하기에 적합하도록 가볍고 충격에 강한 특성을 갖도록 특수 제작해야 한다“며 “모듈 크기, 설치 각도, 면적, 전체적인 조화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설계와 시공이 요구 되어 어려운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ZEB 5등급 의무화 제도가 시행되면 건설사들의 시공비가 분양가에 전가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국 민간아파트의 ㎡당 평균 분양가(공급면적 기준)는 575만5000원으로 전년 대비 1.28% 상승했다. 서울은 1376만3000원으로 전년 대비 16.94% 상승했다. 제로에너지 건축물 의무화로 인해 서울의 경우 ㎡ 분양가가 2000만원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분양가에 전가 되더라도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의 경우에는 시공 비용을 다 반영할 수 없어 건설사의 수익성은 악화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제로에너지 설치 비용의 약 67%는 분양가 가산비에 인정해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로에너지 건물 기준을 맞추기 위해 들어간 33%에 해당하는 금액은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 된 셈이다.
이에 건설 업계는 에너지 자립률 수준을 10% 미만 등으로 더 완화해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다. 중소형 건설사들의 타격은 더 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건설단체 관계자는 “에너지 자립률 기준을 지금보다도 더 완화해야 한다”며 “이미 1군 시공사의 경우 단열 등에 고급 건자재를 사용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건설비 상승 폭이 크지 않지만 그렇지 않았던 중소형 건설사의 경우 건설비가 수직 상승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제로에너지 기준 제도가 정착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거주자들의 비용이 절감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나금융연구소 ”ZEB가 확산되면 규모의 경제로 중장기 추가 공사비는 하락할 전망“이라며 ”전기수요를 자체 생산한 전기로 충당할 경우 비용절감 효과가 커질 수밖에 없어 분양가가 일부 상승하더라도 주택 수요자의 체감 만족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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