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의 아버지’로 불리는 서배스천 스런 스탠퍼드대 교수가 2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포럼 2025’의 특별 강연에서 일관되게 강조한 메시지는 ‘인공지능(AI) 산업이 이제 겨우 초입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는 2022년 말 오픈AI의 대화형 AI 서비스 ‘챗GPT’가 출시되면서 촉발된 AI 혁명이 최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지금껏 문자·이미지·영상 등이 중심이 된 디지털 혁신이 이제는 현실 세계로 나와 제조·의료·제약바이오 등 실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등 글로벌 리더들이 AI 기술이 로봇·자율주행을 비롯한 제조업으로 스며들면서 ‘피지컬 AI’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강조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스런 교수가 AI 응용 영역의 대표 분야로 뽑은 것 중 하나는 한국이 강점을 갖는 반도체와 인프라 영역이다. 통상 AI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와 같은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해당 분야 역시 혁신의 여지가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스런 교수는 “AI 혁신이 확산하면서 일상생활로 향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의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오늘날 활용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애초부터 AI를 위해 설계된 것은 아니라 그저 AI가 각광받을 때 GPU가 존재했던 것일 뿐”이라며 “구글에서 만든 트랜스포머 아키텍처도 당시 하드웨어(HW) 수준을 고려해 발명된 것이 아니며 수억 건의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직면한 여러 과제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면서 “한국이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술을 포함해 각종 제조업에서 쌓은 데이터와 경험을 활용하면 AI 시대에서도 기술 강국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스런 교수는 반도체 역량을 살린다면 한국도 AI 시대의 주요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AI 반도체 시대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반도체 문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도체는 HW 산업처럼 여겨지지만 AI 반도체의 경우 소프트웨어(SW)와 HW의 최적화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고성능 엔비디아 GPU보다 저급 제품을 썼지만 자체 모델 학습법과 클러스터링 기술을 접합해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낸 중국의 오픈소스 모델 ‘딥시크’를 사례로 들어 설명했다. 스런 교수는 “한국 하면 반도체라고 할 만큼 이 분야에서는 말할 것 없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췄지만 한국의 SW 경쟁력은 HW만큼은 아닌 게 현실”이라며 “AI 반도체는 SW와 HW를 어떻게 융합할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보유한 반도체 기술에 새로운 차원의 SW 기술을 더해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면 시장의 큰 플레이어로 올라설 수 있다”고 했다.
스런 교수는 오픈AI·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이 AI 리더십을 두고 세상을 집어삼킬 듯 경쟁해왔지만 AI 산업의 진짜 과실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응용 분야에 내재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지금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AI 산업의 가장 큰 질문은 추상적인 차원에 불과하던 대규모언어모델(LLM)을 통해 어떻게 사회 변화를 이끌고 개별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라며 “응용 분야는 여전히 압도적 강자가 없다”고 진단했다. 스런 교수는 “LLM과 파운데이션 모델이 실생활을 완전히 바꾸는 제품으로 연결되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다양한 분야에서 SW 엔지니어들이 엄청나게 활용하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과 그 외의 다른 산업에서는 아직 체감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역설했다.
그가 대표적으로 꼽은 잠재성 높은 또 다른 분야는 의료 산업이다. 현재 통상 신약을 개발하는 데 약 10억 달러가 투입되는데 신약 개발과 설계 전 과정을 AI로 효율화하면 이를 1만 달러 정도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런 교수는 “독성 평가와 임상 시험까지 신약 개발 기간과 비용을 AI가 크게 단축할 수 있다면 시장 자체가 엄청나게 변할 것”이라며 “개별 약품에 대한 개발 비용이 낮아지면 정밀의료 시대도 앞당겨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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