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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연구진이 찾은 양자컴 오류 해법 ‘양자거리’ [김윤수의 퀀텀점프]

입자의 양자 상태를 표현하는 블로흐 구. IBS 웺사이트 캡처




양자컴퓨터 연산의 기본 단위인 ‘큐비트’는 0과 1의 디지털 정보를 동시에 가졌다고 표현되죠. 설명이 모호한 큐비트를 그나마 명쾌하게 시각화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블로흐 구(球)’입니다. 블로흐 구는 수학시간에 배웠던 (x, y, z) 좌표공간 위에 놓인 반지름 1짜리 구입니다. 구의 맨아래인 ‘남극점’은 1의 상태, 반대로 맨 위인 ‘북극점’은 0의 상태로 정의됩니다.

지금의 컴퓨터 연산 단위인 ‘비트’는 0이나 1의 상태만 가질 수 있고 이는 블로흐 구의 남극점이나 북극점에만 대응됩니다. 반면 큐비트는 0과 1의 중첩 상태를 가질 수 있고 이는 비유하면 남극과 북극의 사이 어딘가에 대응될 수 있습니다. 남극과 북극 사이라고 해서 그 위치가 반드시 구면의 정가운데인 적도가 될 필요는 없고 0과 1이 어떤 가중치로 중첩됐는지에 따라 무수히 많은 지점들이 될 수 있습니다.

국내 연구진이 6일 양자컴퓨터의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개발해 3대 국제 학술지 중 하나인 ‘사이언스’에 발표했는데요. 블로흐 구를 알면 이번 연구성과의 핵심 개념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양자거리’입니다.

김근수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와 양범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공동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전자의 양자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입자는 에너지, 운동량, 스핀 같은 고유한 양들을 갖고 이를 통해 양자 상태라는 것이 정해집니다. 이 양들의 중첩현상을 응용한 게 큐비트죠. 이때 두 입자의 양자 상태가 얼마나 비슷하거나 다른지를 나타내는 양이 양자거리입니다.

입자의 상태는 블로흐 구 위의 한 점에 대응될 수 있다고 했죠. 결국 두 입자의 양자거리는 블로흐 구면에 놓인 두 점 사이의 거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양자거리가 ‘상태의 유사도’로서 m(미터) 단위로 표현되는 일상의 거리와는 다른데도 ‘거리’로 불리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양자거리 측정은 양자컴퓨터 정확도 향상과 직결됩니다. 새삼스러운 설명이지만 지금의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0과 1의 비트를 구별하는 일부터가 필수겠지요. 컴퓨터가 0을 1로, 또는 반대로 1을 0으로 잘못 인식하는 오류인 ‘비트 플립’이 발생하면 계산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마찬가지로 양자컴퓨터도 큐비트들을 서로 구별해 하나하나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을수록 계산 정확도가 높아집니다. 다만 0과 1의 차이만 구별하면 되는 지금의 컴퓨터보다는 훨씬 복잡하겠죠.

다시 블로흐 구를 떠올려보면 지금의 컴퓨터는 남극점(1)과 북극점(0)만 구별하면 되지만, 양자컴퓨터는 큐비트마다 0과 1이 어느 가중치로 중첩됐는지, 즉 큐비트 입자의 양자 상태에 따라 가능한 무수히 많은 점들을 구별해야 합니다. 두 점 사이의 거리, 즉 양자거리를 정확하게 구한다는 것은 곧 큐비트 입자들을 정밀하게 구별해 제어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두 입자의 양자거리를 시작적으로 표현한 그림. 사진 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원자 크기가 0.1㎚(나노미터·10억 분의 1m), 전자는 이보다도 훨씬 작은 탓에 이 입자들의 미세한 상태 차이를 식별하는 양자거리 측정은 쉬운 일이 아니겠죠. 이번 연구에 참여한 양 교수가 앞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협력해 근삿값을 구하는 방법을 찾아 ‘네이처 피직스’에 발표한 적 있고요. 이런 가운데 근삿값을 넘어 정확한 양자거리를 측정해냈다는 게 이번 연구성과입니다.

원리를 요약하자면 ‘위상’이라고 하는 입자의 또다른 성질을 측정하면 양자거리도 연쇄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위상은 전자기파나 음파 같은 파동이 갖는 성질인데 양자역학에서 작은 입자를 파동으로 해석하다보니 자주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양자역학의 대표 방정식인 슈뢰딩거 방정식도 파동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파동방정식의 일종입니다. 위상은 또 블로흐 구에서는 극각과 방위각, 즉 위도와 경도와 관련된 양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연구팀은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가진 물질인 흑린을 방사광가속기와 각분해광전자분광 실험을 동원해 위상차를 구하고 이를 통해 양자거리를 측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김 교수는 “건축물을 안전하게 세우기 위해 정확한 거리 측정이 필수인 것처럼 오류없이 정확하게 동작하는 양자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도 정확한 양자거리 측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연구성과가 양자컴퓨터, 양자센서와 같은 다양한 양자 기술 개발을 위한 기초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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