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교사 5명 중 4명이 학부모에게 어쩔 수 없이 개인 휴대전화번호를 공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중등교사노동조합(중등교사노조)가 5일 중·고등학교 교사 1만95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77.8%가 학생 또는 학부모에게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고 있었다. 이들 중 87.3%는 ‘공식 민원 대응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번호를 공개해야 한다’고 답했다.
공식적인 민원대응 창구가 없기 때문에 교사 번호 공개가 사실상 구조적으로 강제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교사들은 교사의 개인번호 공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등교사노조는 "최근 발생한 제주 모 중학교 교사의 사망 사건은 교사의 휴대전화가 사적 민원 창구로 전락한 현실의 극단"이라며 "출석 여부를 확인하거나 단순한 행정 연락조차 교사의 개인 연락처를 통해 이뤄져야 하는 구조 속에서 교사는 혼자서 모든 비난을 감당하며 고립됐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교육당국은 학교 단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식 민원 접수·처리 시스템을 마련하고 민원은 반드시 공적 절차를 통해서만 접수·처리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교사가 개인번호를 공개하지 않더라도 온라인 소통 앱 등을 통해 민원이 직접 전달되는 경우도 많아, 실질적인 보호 장치 없이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이와 관련해 "교권 보호와 민원 대응 체계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편 지난달 제주도의 한 중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된 40대 남성 교사 A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학생 가족의 민원을 개인 휴대전화로 감당해온 사실이 밝혀졌다. 제주도교육청은 ‘서이초 사건’ 이후 민원 대응 매뉴얼을 정비해 “교사에게 직접 전화가 가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었지만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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