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습으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확산되면서 국제유가가 10% 이상 급등하고 금을 비롯한 안전자산의 가격이 치솟았다. 불확실성 확대로 코스피지수는 1%가까이 하락하며 2900 선을 내줬고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확전 가능성을 주목하면서 미국의 관세 여파까지 겹쳐 당분간은 증시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진단했다.
13일 뉴욕상품거래소에 따르면 7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한때 배럴당 77.58달러를 기록하면서 전 거래일 대비 14.02% 급등했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 지역이자 원유 생산량의 31%가량을 차지하는 중동 지역 갈등으로 원유 가격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스라엘은 이날 새벽 이란의 나탄즈 핵시설을 비롯한 표적 수십 곳에 선제 타격을 단행했다. 이란은 이번 공습을 ‘레드라인(자국 핵시설 공격)’을 넘은 것으로 간주하고 대규모 보복을 시사했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미국이 사전에 주이라크 대사관을 포함해 중동 지역 주재 인력에 대해 부분 철수 명령을 내렸다는 점에서 사태가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첫 거래에서 미 증시는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개장 직후 1% 넘게 하락했다. 쉐브론과 엑손 모빌, 코노코필립스 등 에너지기업 주가가 3~4%, 록히드 마틴 같은 무기 제조업체들도 장중 3% 이상 올랐다.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위험자산에 대한 회피 심리도 커졌다. 원·달러 환율은 한때 1373.0원까지 치솟으면서 전 거래일보다 10.9원 오른 1369.6원에 오후 장을 마감했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달러화는 강세로 전환했다. 유로화 등 주요 6개국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DXY)는 98.25로 전 거래일 대비 0.37% 올랐다. 안전자산인 금 가격 역시 2% 이상 상승했다. 한국거래소 기준 15만 530원으로 3440원(2.34%) 상승했다.
반면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에서 1비트코인은 전날보다 1% 넘게 떨어진 1억 4000만 원대에서 거래됐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중동 갈등이 확장되면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서 원유 가격이 더욱 급등할 수 있다”며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 등을 지켜봐야겠지만 당분간 금 등의 안전자산으로의 자금 유입이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지수는 20.61포인트(2.61%) 떨어지면서 관세 부과가 본격화됐던 4월 7일(-5.25%) 이후 두 달 만에 최대 폭으로 하락했다.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5.41포인트(0.87%) 하락한 2894.62로 거래를 마감하며 ‘허니문 랠리’를 끝내고 8거래일 만에 하락 전환했다. 이 밖에 일본 닛케이 225는 0.89% 빠졌으며 상하이종합지수 0.75%, 홍콩항셍지수 0.59%, 대만 자취엔지수가 0.96% 내렸다.
다만 외국인투자가는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1219억 원을 사들이며 8거래일 연속 순매수 기조를 이어갔다. 개인도 4669억 원어치를 순매수했지만 기관은 6109억 원가량 순매도했다. 그간 한국 증시 저평가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로 매수세가 이어진 만큼 대외 변수로 인한 자금 이탈은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실제 외국인은 이날 SK하이닉스(000660)(1811억 원), 현대차(005380)(470억 원), 기아(000270)(431억 원)를 비롯해 조선주인 HD현대미포(010620)(381억 원), 정유주인 SK이노베이션(096770)(201억 원) 등을 적극 사들였다. 업종별로 보면 해운사(5.39%), 방산(3.10%), 가스(1.86%), 조선(1.64%)이 강세였다.
전문가들은 통상 지정학적 리스크는 증시에 일시적인 이벤트라고 보면서도 전면적 확전 등으로 사태가 확산될 가능성에 대해 긴장감 있게 주시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확전 장기화 등으로 다시 한 번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며 “중동 긴장과 다음 달 초 관세 문제를 비롯한 무역 합의 등이 증시의 방향성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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