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재계에서는 “일단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는 기대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만들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립 서비스’ 이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다. 기업들은 올해 마련되는 내년도 세법 개정안이 이재명 정부의 친기업 행보를 확인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6일 국회 예산정책처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올해 기업들이 부담하는 법인세는 88조 원 이상으로 지난해보다 40% 안팎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3대 국세인 법인세는 삼성전자 등의 영업 실적 감소로 2년 연속 줄었다가 올해 가까스로 반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법인세는 앞으로 4년간 연평균 13.6%씩 늘어 2028년에는 100조 원 고지를 밟게 된다. 이는 그만큼 우리 경제가 성장한다는 가정에 따른 전망치이기는 하지만 미국·중국 등 글로벌 기업들과 막대한 시설투자 및 연구개발(R&D) 경쟁을 벌여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매년 불어나는 세금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 우리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동시에 압박을 받고 있다. 자동차·철강 등 주력 제조 업종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조치로 대미 수출이 타격을 입은 데다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로 국내 시장까지 잠식당할 판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법인세 등 각종 세금을 깎아주겠다며 투자 유치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세금 부담이 올라가면 한국 전체가 갈라파고스처럼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계는 이에 따라 정교한 세법 개정 요구안을 마련해 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우선 투자·상생협력 촉진세제를 재설계해 소수주주 배당을 공제 대상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 사항을 담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제도는 2015년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기업소득환류세제가 원조로 기업이 가계로 돌려주지 않은 소득(미환류소득)에 대해 20%의 단일세율을 적용해 법인세를 추가로 매기는 제도다. 이중과세 논란에도 연장을 거듭하고 있는데 재계는 연말 일몰을 앞두고 폐지 주장에서 한 발 물러난 소수주주에 대한 배당을 환류로 인정해달라는 입장이다. 현행법은 환류 방식으로 투자, 임금 증가, 상생 협력 지출 3가지만 인정한다.
관세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대기업의 과감한 국내 설비투자에도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달라는 내용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말 여야는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연장하면서 대기업만 제외한 바 있다. 이 제도는 올해 일몰 시기가 재도래하는데 이 대통령의 ‘인공지능(AI) 100조 원 투자 시대’를 열려면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임시투자세액공제 추가 연장은 물론 대기업에도 확대 적용이 필요하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국내 제조기업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의 투자는 협력 중소·중견기업의 일감 확대와 연쇄적인 투자·일자리 창출을 일으킨다”며 “유연한 실용정부를 표방한 새정부가 2023년 한시 도입한 대기업에 대한 임시투자세액공제를 부활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이 밖에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기업의 설비투자를 늘리는 차원에서 투자 세액공제 증가분 공제 한도 폐지도 테이블 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는 직전 3년 대비 투자증가분 공제액이 당기 투자분 공제액의 2배를 넘을 수 없도록 제한해 투자를 아무리 늘려도 적용받을 수 있는 공제율에 한계가 있다.
결손금 이월공제 한도를 폐지도 기업의 요구 대상이다. 기업에 손실(결손)이 발생하면 15년간 이월해 해당 연도 과세소득에서 공제할 수 있는데 대·중견기업은 당해 연도 소득의 80%까지만 공제 가능하다. 손실 규모와 무관하게 나머지 20% 소득은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것이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중견기업 규모 이상 기업들은 초기 단계에서 손실을 감수하고 대규모 투자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향후 사업 유지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손실을 보전해주는 것이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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