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9월 일본과 독일의 천문학적인 대미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기 위해 주요 5개국(G5) 사이에 플라자합의가 이뤄졌다.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고 엔화와 마르크화 강세를 통해 미국의 적자 폭을 줄이는 게 목표였다. 엔·달러 환율은 플라자합의 직전 242엔에서 1987년 3월 140엔대까지 하락(엔화 가치 급등)했다. 이후에는 거꾸로 과도한 달러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한 루브르합의가 1987년 2월 체결됐다. 일본은행(BOJ)은 엔화 강세에 따른 경기침체를 막고 루브르합의를 지키기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가뜩이나 과열 상태였던 일본 경제에 거품이 더 끼었다. 1987년 도쿄의 상업 부동산 공시지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48.2%, 1988년에는 무려 61.1%를 기록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BOJ는 1989년 5월 0.75%포인트 인상을 시작으로 5차례에 걸쳐 금리를 3.5%포인트나 올렸다. 일본 대장성(현 재무성)은 1990년 뒤늦게 부동산대출 총량 규제를 도입해 시장을 옥죄기 시작했다. 일본 버블 붕괴의 서막이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단초가 된 부동산 시장 붕괴가 BOJ의 급격한 금리 인상과 대출 총량 규제가 겹쳐 일어난 만큼 한국에서도 선제적으로 금융 안정에 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지금의 소모적인 금융 당국 재편 논의보다는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정부와 한국은행이 가계대출과 부동산 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한은의 사정에 정통한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14일 “한은이 공식적으로 외부에 얘기하지 않고 있지만 한국의 부동산 시장 버블이 옛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이 붕괴하면 가계대출과 은행의 건전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만큼 통화정책과 부동산, 금융 안정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은은 지난달 한국의 민간 부문(가계+비금융사) 부채가 2023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207.4%로 버블기 일본의 최고 수준인 214.2%(1994년)에 근접했다고 밝혔다. 특히 민간 부채 중 가계빚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약 45%로 일본 32%(1994년)보다 더 높다고 강조했다. 이미 한국이 일본 수준의 버블이 끼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지적한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한국은 2021년 고승범 당시 금융위원장이 대출총량제를 들고나오면서 그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6%로 묶었다. 지난달에는 수도권의 주택담보대출 가능액을 6억 원으로 일괄 제한해 일본보다 더 강력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만 해도 부동산 관련 대출 증가율을 총대출 증가율 이하로 묶는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와 한은이 긴밀히 소통하면서 금융 안정성 유지 방안을 지금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가 지배적이다. 올해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리면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반대로 금리인상기에는 타격이 클 수 있다.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일본은 총량 규제가 BOJ의 금리 인상과 동시에 진행되면서 시장에 미치는 충격파가 훨씬 컸다”며 “정부와 중앙은행의 의사소통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로 금융위원회의 산업과 감독 정책을 분리해 별도 부처에서 나눠 갖게 되면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이 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가계부채 대응도 지금까지 이를 담당해왔던 금융위가 계속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처 기능 분산보다 한은에 금융사 감독과 규제 권한을 줄지 같은 보다 근본적인 밑그림을 그려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융 안정이라는 공동 목표를 고려할 때 한은과 금융 당국의 긴밀한 정책 조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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