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류지연의 MMCA소장품이야기(9)> 심경자 '별전' [아트씽]

1970년대 초부터 '탁본 기법' 심경자

기와·엽전·떡살…전통소재 현대적 재탄생

대학 때 접한 탁본과 한지의 물성 접목

심경자 '별전' 1973년, 종이에 먹, 색, 종이, 콜라주, 탁본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심경자(81)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점은 1971년부터다. 그전에는 백양회를 중심으로 스승이던 김기창, 박래현, 성재휴, 이유태 등과 전시에 출품했으나 1971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연륜’으로 동양화 비구상 부문에서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하면서부터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1970년대 초반 한국화단의 신진세대들은 이전 세대의 산수화풍을 벗어나서 현대미술을 다루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기에 국전의 동양화 비구상 부문에서는 실험적인 작업들이 많이 선보였다. 작가는 당시 나무토막, 떡살, 다식판 등을 탁본기법으로 화면에 찍어나가는 ‘탁본 기법’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는데 이러한 작품에 대해 평론가 이일은 “심경자의 ‘연륜;이 훌륭한 작품이며 섬세한 추상에 공감이 가고 동양화가 지니는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1972년에는 ’반야경'으로 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하이라이트는 1973년 국전이었다. 1971년부터 연이어 국전에 출품하면서 역량을 인정받았던 심경자였기에 1973년 ‘별전(別錢)’을 출품했을 때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송영방 작가와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끝에 특선을 수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흔히 한국화라고 하면 여전히 산수, 인물, 풍속, 사군자 등에 머물러있던 관념적인 소재를 탈피해 탁본으로 만든 질감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 있어서 그 만의 특색을 찾을 수 있다. 더불어 한국의 토속적 감성을 보여주는 요소가 소재에만 머물러있지 않다는 점을 작가는 잘 알고 있었기에 토속적인 소재를 이용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켰다. 화면 위에서 나이테, 돌의 자연적인 요소와 기와, 엽전, 떡살과 같은 문화적인 유산으로서의 개체들은 원래의 속성들이 사라지고 집성체로서 새로운 구성을 이루게 된다.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기물이나 재료의 특성이 보이는 듯 하지만 화면을 멀리서 전체적으로 보게 되면 공간의 표면들이 서로 얽혀져서 상상의 공간이 눈 앞에 펼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시, 음악을 좋아했기에 “머리 속에 늘 담고서 무의식에 의해 마음을 따르듯이 그렸다”고 말했듯 그의 화면은 여백을 바탕삼아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깊이감을 보여주면서 산수화의 변형처럼 보이기도 하는 심연의 공간으로 관람객을 이끌고 있다.




작가는 한지에 엽전, 전통공예문양, 나무 표면 등을 탁본으로 뜨고 그 종이를 자르고 색을 더해 붙인다. 다소 쉬워보일 수 있으나 그 밑작업은 수고로운 노동력과 섬세하고 예민한 손을 필요로 한다. 작업기반인 탁본은 돌, 금속, 나무의 표면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 형태 등을 종이로 떠내는 기술인데 신라성덕대왕 신종의 비천상, 광개토대왕릉비 같은 문화재를 탁본으로 하여 잘 알려져 있다. 작가는 대학시절 탁본을 접했으나 기존 방식 대신 이중 탁본, 농담 표현, 질감 추가 등 자신만의 독자적인 방식을 만들어내어 50년 넘게 작업의 근간으로 유지하고 있다. 전국을 다니면서 탁본하는 가운데 오래된 절이나 궁에 들어가기도 하고, 그러다가 우연하게 기와를 발견하기도 하고 의외의 재료들을 발견하는 등 열성을 다했다. 이 작품 ‘별전’은 별전만 수집해 온 이화여대 교수에게 부탁해 탁본을 뜬 것으로 작업했는데 당시 한국화에서조차 별전에 관심을 둔 이는 별로 없었다. 작가는 탁본을 하는데 있어서 동서양을 가리지 않았다. 그의 차에는 탁본할 수 있는 재료가 항상 실려있었다. 작가의 이러한 노력들도 탁본 종이에 직간접적으로 다 담긴다. 탁본 과정에서 드러나는 흔적과 종이를 찢고 붙여나가는 콜라주의 그 모든 과정 속에 작가의 섬세한 손길과 신체의 즉흥적인 움직임이 반영된다. 한지라는 종이의 물성은 작가와 일체화가 되어 가장 중요한 재료이자 결과물이 되는 것이다.

1971년부터 1974년 연이은 국전 수상 이후 1976년 개최한 개인전은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여성 한국화가로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한 행보이며 이는 1977년 이후 파리 유학으로 이어져 해외활동도 하게 되었다. 작가는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작가와의 대화 영상에서 탁본한 종이로 늘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는데 설치미술도 하고 싶고, 생의 마지막에는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 한 장을 그리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이제껏 작업을 하는데 있어 가장 큰 고난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늘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유지하려고 하는 작가의 태도는 원로작가로 식지 않는 열정과 품격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필자가 심경자 작가의 인품에 감동한 건 여러 차례였다. 처음 만난 시점은 2001년경 이듬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최할 ‘바보천재 운보그림전’ 준비를 위해서였다. 작가는 수도여자사범대학 은사였던 운보 김기창과 우향 박래현의 작품이 제대로 보여지기를 희망하면서 운보 김기창의 소장가나 대여기관을 일일이 알려주시며 필요하다면 당신이 직접 나서서 연락해주시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은 필자를 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인으로서 응대해주셨다. 종종 안부인사를 나눴는데 심 작가는 미술관 큐레이터로서 일하는 필자에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지내시라”라는 덕담을 주시기도 하였다. 또한 2010년 권진규 전시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꼭 만나야 한다고 연락이 와서 전화를 드렸더니 권진규가 60년대 후반 수도여대 강사로 나갔을 때 선물로 주고 간 테라코타 작품을 고이 간직하고 계셨다가 ’제 주인을 만난 듯 하다‘며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해주셨다.

지난해 5월 연락드렸을 때는 외국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기분이 좋다고 하시며 “마지막까지 좋은 작품을 남기고 싶은 게 소원”이라고 하셨는다. 지금은 편찮으셔서 원하시는 만큼 작업을 하실 수 없는 게 안타깝지만 필자가 일하면서 알게 된 몇 안 되는 좋은 작가이자 진정한 어른으로서 심경자의 작품이 제대로 조망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심경자 ‘별전’은 국립현대미술관 MMCA 과천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II’에 전시 중이다.

심경자: 1944년 경남 창녕 출생으로 1962~68년 수도여자 사범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7~1979년 파리에서 유학하면서 폴 파케티 화랑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1970~1971년 한국미술대상전 입선 및 우수상 수상, 1970~1973년 국전 연속 4회 특선을 수상했고, 1975년과 1981년 국전 초대작가로 출품했다. 세종대학교 회화과 교수를 역임하면서 1976년 미술회관부터 2004년 갤러리현대까지 10회 개인전을 개최했다. 1981년 국전 심사위원, 1991·95·97 MBC 미술대전 심사위원, 1994년 동아미술제 심사위원, 2000년 중앙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필자 류지연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운영부장이다. 1996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입사해 전시기획, 미술관교육, 소장품연구, 레지던시, 서울관·청주관 건립TF 등 미술관에 관한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하며 29년째 미술관을 지키고 있다. 영남대 미학·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영국 에식스대학교(Essex University)에서 미술관학(Gallery Studies)을 공부했으며, 서울대에서 미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겸임교수(2022~2023)를 비롯해 여러 미술관과 기관의 운영자문위원, 소장품 수집위원 등을 맡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