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 국채 보유량을 줄이는 대신 금·에너지 등 비(非)달러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달러 의존도를 줄이는 동시에 미국의 금융 제재가 가해질 상황을 대비한 사전적 조치로 해석된다. 중국이 미국과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기축통화인 달러의 힘을 약화시키고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하려는 목적에서 미 국채를 팔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21일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중국은 3월 주요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 순위 2위에서 3위로 밀려났고, 5월에는 미국 국채 보유량을 전월 대비 9억 달러 줄여 7563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09년 2월(7442억 달러) 이후 최저 수준이다.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은 2013년 11월 1조 3160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이는 다른 나라들이 미국 국채를 늘리는 흐름과 반대되는 움직임이다. 미국 이외 국가의 미 국채 보유량은 4월 9조 130억 달러에서 5월에는 9조 460억 달러로 증가했다. 1위 일본과 2위 영국의 미 국채 보유는 5월까지 나란히 5개월 연속 증가했다. 일본은 1조 1350억 달러, 영국은 8094억 달러를 기록했다. 왕펑 사회과학원 부연구원은 “미국 정부 부채에 대한 과도한 의존 위험을 줄이고 지정학적 긴장으로 인한 잠재적인 경제적 손실, 특히 미국이 제재를 가할 경우 자산 동결 위험을 제한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조치는 미국의 재정 적자 증가와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판궁성 인민은행 총재는 달러화가 세계 기축통화로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하는 데 따른 위험을 지적하고 미국의 재정 및 금융 규제 문제가 확산될 수 있으며, 달러가 지정학적 갈등에서 무기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천웨이둥 중국은행 연구소장도 “미국 국채를 세 번째로 많이 보유한 국가인 중국은 미국 국가 부채와 달러 기반 금융 시스템과 관련된 위험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다층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며 비달러 투자를 늘리고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미 국채를 팔아 치우는 대신 자산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금·식량·에너지·광물 등 비달러 자산의 큰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SFO)에 따르면 중국의 공식 금 보유량은 6월 말 기준 7390만 트로이온스를 기록하며 8개월 연속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핵심 광물의 중국 집중도는 높은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구리·리튬·니켈·코발트·흑연·희토류 등 6대 핵심 광물의 정제 생산에서 중국이 세계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희토류·흑연은 중국 점유율이 90%에 달하고 코발트는 약 80%, 리튬은 약 70%, 구리는 45%가 중국에서 정제된다. 니켈은 중국과 인도네시아 합계 50% 이상이다. 중국은 본토에서 생산하는 광물뿐 아니라 아프리카 등 해외에서도 광물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 내 싱크탱크에서도 비달러 자산 보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중국의 경제학자와 정책 고문들은 중국 외환 보유액의 균형 있고 통제 가능한 배분을 위해 아시아 무역 파트너의 금융 상품, 금, 에너지, 식량 등 핵심 자원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 전직 고문이자 사회과학원 수석 경제학자 유융딩은 중국이 미국 정부의 국채 보유량을 체계적인 방식으로 계속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상적인 접근 방식은 수입을 늘리고 초과 외환 보유액을 활용해 기술집약적인 자본재와 전략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이는 중국이 무역 흑자를 축소하거나 상품 및 서비스 무역에서 일부 손해를 보면서 무역 적자를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미국 등 주요국이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힘쓰는 가운데 중국은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도입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중앙정부의 통제가 불가능한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강력한 금지 정책을 펼쳐왔다. 다만 홍콩에서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령을 발표하며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만큼 이를 본토로 확대하는 방안도 모색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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