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미 간 관세 협상에서 구글과 애플 등 미국 빅테크에 대한 고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의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가 안보 등을 이유로 고정밀 지도 반출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구글 등의 지도 반출 신청도 거부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조심스럽게 상황을 관망하자는 분위기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1일 긴급 브리핑에서 고정밀지도 데이터 반출 문제나 방위비 문제, 무기 수입 협상 등에 대해서는 "이는 별개의 이슈로, 이번 협상 결과에는 포함되지 않았다"며 "온라인플랫폼법·인공지능(AI) 칩 및 그래픽처리장치(GPU) 구매 요구 등도 없었다"고 밝혔다.
앞서 구글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올해 2월 18일 국토부 국토지리정보원에 5000 대 1 축적의 국내 고정밀 지도를 해외에 있는 구글 데이터센터로 이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청했다. 외국인 이용 편의성이 증대해 관광산업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정부는 안보와 데이터 주권 우려 등으로 결정 기한을 한 차례 미뤘다. 내달 11일 결론을 낼 예정이다. 구글이 국내에 자체 구축 서버를 두지 않아 한국 정부에 내는 법인세가 실제 수익에 비례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개발한 정밀 지도 데이터만 노리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구글이 지난해 낸 법인세는 172억 원이다. 네이버(3842억 원)나 카카오(035720)(1571억 원) 대비 적은 액수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국내 데이터센터 기반으로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다.
이미 구글은 2011년과 2016년 두 차례 지도 반출을 공식 요청했으나 정부는 군사기지 등 보안시설 정보가 담긴 지도 데이터를 해외 서버에 두면 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정부는 2016년의 경우 국내에 서버를 두고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활용하라고 제시했지만, 구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플도 지난달 국토지리정보원에 5000 대 1 축적의 국내 정밀 지도 데이터를 해외로 반출할 수 있게 허가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애플은 구글과 달리 국내에 서버를 두고 있으며, 블러, 위장, 저해상도 처리와 관련한 정부의 요구 사항을 국내 여건에 맞춰 수용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기업들도 초정밀 지도 정보 반출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부는 사실상 지도 반출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이달 29일 인사청문회에서 구글의 고정밀 지도 반출 요청은 안보 문제를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 장관 후보자는 “통상 문제 등이 있기에 (지도 반출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진행할 필요도 있겠지만 그에 우선하는 것이 국방과 국민의 안전”이라며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5000 대 1 축척의 지도는 굉장히 정밀한 지도이기 때문에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공개한 곳이 없다"며 "이런 점을 참고해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14일 인사청문회 당시 “국가 안보와 정보 주도권 측면에서 신중하게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도 2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국내가 아닌 해외 서버로 반출하는 것은 국가 안보, 국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