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 상법이 시행됐지만 이사의 경영 판단 책임을 경감하는 방향으로의 배임죄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9일 '배임죄 제도 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개정 상법이 시행됐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주주에 대한 배임죄 성립 여부나 경영 판단 원칙 적용 여부 등이 모호해 혼란이 있다"며 "합리적 경영 판단에 대한 면책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이사회 의사 결정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배임죄 제도에 대해 △구성요건이 모호하고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35년 전 가중 처벌 기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고소·고발이 남발되는 한편 △민사문제의 형사화 등을 들었다.
우선 상의는 실제 침해가 아닌 침해 위험까지 명확한 고의 외에 미필적 고의까지 배임죄를 적용할 수 있는 모호한 구성 요건을 문제로 꼽았다. 이로 인해 법원행정처의 사법연감을 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배임·횡령죄의 무죄율은 평균 6.7%지만 형법 전체 범죄 평균(3.2%)보다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다툼의 여지가 많다는 의미다.
또 현행 특경법상 배임죄에서 가중 처벌되는 이득액 기준은 1984년 제정 당시 1억 원과 10억 원에서 1990년 5억 원과 50억 원으로 한 차례 상향된 뒤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상의는 "소비자물가지수(CPI) 기준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1990년의 5억 원·50억 원은 현재 화폐가치로 약 15억 원·150억 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상의는 경영상 판단에 따른 투자 실패에도 경영자가 배임죄로 고소당한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상의는 이번 상법 개정 이후 이런 사례가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했다. 사인 간 민사 분쟁을 배임죄와 같은 형사적 수단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에 대한 문제 제기도 끊이지 않고 있으며 고소가 수사기관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민사 소송 증거 확보나 협박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상의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해외 사례를 비교 분석해 우리나라의 배임죄가 가장 무겁게 처벌되고 있음도 강조했다. 현행 특경법상 배임을 통한 이득액이 50억 원 이상일 경우 기본 형량은 '5년 이상 징역 또는 무기징역'인데 미국과 영국은 해당 사례를 배임죄 대신 사기죄로 규율하거나 손해배상 등 민사적 수단으로 해결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은 배임죄가 있지만 특별법을 통해 가중 처벌하지는 않는다. 아울러 판례에서 인정되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상법, 형법 등에 명문화해 기소 단계부터 이사의 책임을 면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법이 강화된 만큼 경영 판단 의사 결정을 보호하는 제도가 균형 있게 마련돼야 한다"며 "최근 정부가 '경제형벌 합리화 TF'를 발족해 1년 내 전 부처의 경제 형벌 규정 30%를 정비한다는 목표를 정한 만큼 국회에서도 배임죄 개선 논의가 조속히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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