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공지능(AI) 데이터 기업 팔란티어 테크놀로지는 AI 대표주다. 팔란티어의 기업가치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해에만 주가가 109.9% 올랐고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무려 250배 수준으로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AI 거품론까지 불거지며 주가는 6거래일 연속 하락했다가 22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자 가까스로 반등했다. 반대로 팔란티어가 빠른 성장 속도로 이르면 2년 내 기업가치가 1조 달러(약 1385조 원)로 증가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기업가치(3764억 달러) 약 2.7배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으로 오히려 매수 기회라는 견해도 나온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24일 기준 글로벌 리서치 기관 중 4곳은 매수 의견을, 17곳은 중립 의견을, 4곳은 매도 의견을 내놨다.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팔란티어를 정리했다.
페이팔 창업자가 설립…빈 라덴 사살 작전에도 활용
팔란티어는 2003년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 이사회 의장과 미국 스탠퍼드 로스쿨과 독일 괴테대학교에서 각각 법학 박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알렉스 카프 최고경영자(CEO) 등이 세운 기업이다.
팔란티어는 미국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사세를 확장해 왔다. 2005년 미국중앙정보국(CIA)의 벤처캐피탈인 인큐텔(In-Q-Tel)의 투자를 받으며 주목받았다. 미국 정부에 정보 수집·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고담(Gotham)’을 제공하고 있다. 고담은 AI가 대규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해 위험을 찾아낸 뒤 빠른 시간 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실시간 위협 탐지 기능으로 이상 상황이 발생하면 대응 전략 정보도 제공해 신속한 의사 결정을 돕는다. 팔란티어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미국 국가안보국(NSA), 미국 국립보건원(NIH),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국가 기관 등도 주요 고객으로 확보했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에도 고담이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 군도 팔란티어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다.
민간 시장도 본격 진출…생성형 AI도 통합
팔란티어는 ‘파운드리’(Foundry)를 선보이며 일반 기업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파운드리는 초반에는 금융 사기나 부실 대출을 막는 데 활용됐지만 제품 생산 관리나 공급망 관리, 수요 예측 등에 활용 되고 있다.
팔란티어는 2023년 생성형 AI와 데이터를 결합한 플랫폼 ‘AIP’(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을 내놨다. AIP는 민간 기업 시장 공략 속도를 높이는 신성장 동력으로 꼽힌다. AIP는 정부·기업 고객이 보유한 데이터와 AI 모델을 통합해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플랫폼이다. 고담과 파운드리와도 연동된다. AIP는 각 기업의 데이터를 활용해 AI 에이전트를 구축하고 관리할 수 있는 ‘AIP 에이전트 스튜디오’, 코딩 없이 다양한 AI 기능을 생성하는 ‘AIP 로직’, AI 시스템을 평가하는 ‘AIP 평가’(Evals), 대화형 지원 도구 ‘AIP 어시스트’ 등으로 구성된다.
의사결정 지원하는 ‘온톨로지’가 경쟁력
팔란티어의 강점은 데이터 분석에 그치지 않고 실제 의사결정으로 연결하는 ‘온톨로지’(Ontology)다. 정부 기관이나 기업 내 흩어진 데이터를 하나의 맥락 있는 구조로 통합하고, 그 위에 판단 기준과 규칙을 적용해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수행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팔란티어는 전통적인 영업 조직 없이 현장 문제 해결을 최우선으로 삼아서 성장했다. 현장 파견 엔지니어(Forward Deployed Engineer·FDE)를 앞세웠다. 엔지니어가 고객사의 현장에 나가 실시간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고객의 피드백을 즉시 반영하며 만족도를 높였다.
아울러 ‘소프트웨어 부트캠프’라는 체험형 영업 방식으로 자사의 기술력을 소개하고 있다. 잠재 고객이 팔란티어의 플랫폼을 직접 경험하며 그 효용을 체험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고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카프 CEO는 “앞으로도 우리의 주요 영업 인력은 기존 고객이 다른 고객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팔란티어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8.0% 증가한 1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시장예상치를 7.0% 상회했다. 팔란티어는 사상 처음으로 분기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올해 4분기 10억 달러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돌파 시기를 앞당겼다.
주당순이익은 0.16달러로 시장 전망치를 16.4% 웃돌았다.
정부 매출은 5억 5000만 달러로 전체 매출의 55%를 차지한다. 특히 미국 정부와 국방 수요 확대와 대형 계약 효과가 매출 상승을 견인했다. 미국 정부 매출은 전년 대비 53% 증가한 4억 26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기업 매출은 4억 5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6.9% 늘었다.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고객사가 늘었다.
카프 CEO는 4일(현지시간) 주주서한을 통해 “수년간의 투자와 외부의 조롱을 견디며 이제 우리의 사업 성장 속도가 급격히 가속화되고 있다”며 “회의론자들은 이제 힘을 잃고 우리에게 굴복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규모 언어모델(LLM)의 도래, 이를 구동할 칩, 그리고 우리의 소프트웨어 인프라가 맞물리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오세훈 시장·국민연금·서학개미도 투자
투자자들의 관심도 뜨겁다. 국민연금은 올해 6월 기준 팔란티어 436만 7000주를 보유했다. 평가액은 22일 주가 기준 6억 9300만 달러(약 9600억 원) 수준이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팔란티어 투자자다. 정부의 ‘2025년 고위공직자 정기 재산 변동사항’에 따르면 오 시장은 지난해 말 기준 팔란티어 1310주를 보유했다.
서학개미들도 팔란티어를 매수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1일 기준 한국 투자자들이 보유한 해외 주식 중 팔란티어는 보관 금액 기준 3위다. 보관액은 52억 7679만 달러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을 제쳤다. 팔란티어를 앞지른 기업은 테슬라와 엔비디아뿐이다.
‘팔란티어 마피아’도 화제…유니콘 최소 12곳
틸 의장의 ‘페이팔 마피아’에 이어 ‘팔란티어 마피아’도 부상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팔란티어 출신들이 350개 이상의 테크기업을 창업하거나 운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소 12곳이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기업)이다. 팔란티어 출신들은 현장에서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 문화와 촘촘한 동료 네트워크 등을 기반으로 기업을 이끌고 있다.
대표 사례가 안두릴이다. 방산 기술 기업 안두릴은 트레이 스티븐스, 맷 그림, 브라이언 심프 등 팔란티어 출신이 세웠다. 안두릴의 기업가치 305억 달러로 성장했다. 마티 스타이세우스키 등이 세운 음성 AI 스타트업 일레븐랩스의 기업가치는 33억 달러로 평가받는다. 제이슨 베이미그가 설립한 법률 테크 기업 아이언클래드는 2022년 32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닉 눈이 만든 데이터 인텔리전스 기업 페레그린테크놀로지의 가치는 25억 달러로 전해진다. 팔란티어 공동 창업자인 조 론스데일은 벤처캐피털 8VC를 설립했다.
한국 시장도 공략…HD현대(267250)·KT(030200)와 협력
팔란티어는 한국 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HD현대그룹이 대표적인 국내 고객사 가운데 하나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틸 의장과 카프 CEO를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HD현대는 팔란티어와 2021년부터 AI 조선소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무인수상정(USV) '테네브리스'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KT는 한국 최초 팔란티어의 프리미엄 파트너사로서 국내에 팔란티어 플랫폼을 확산한다는 목표다.
LIG넥스원은 정찰용 무인수상정, 초소형 영상레이다(SAR) 위성, 기뢰제거, 전자기스펙트럼작전(EMSO) 등 개발 과정에 팔란티어 데이터 관리 플랫폼을 적용했다. DL이앤씨(375500)와 코오롱(002020)베니트도 고객사다.
“선행 PER 250배…지나치게 고평가”
팔란티어의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대감이 과도하게 반영됐다는 것이다. 22일(현지시간) 기준 팔란티어의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250배에 달한다. 이는 테슬라(181배)나 엔비디아(39배) 대비 높다. 올해 들어 주가가 109.9% 상승했다. 공매도 리서치 기관 시트론리서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팔란티어 주가가 40달러까지 하락하더라도 여전히 고평가 상태"라고 전했다. 최근 5000억 달러 수준으로 평가된 오픈AI와 비교했을 때 주가는 40달러에 머물러야 한다고 전했다. 시트론리서치를 이끄는 앤드루 레프트는 “팔란티어의 주가는 이미 기업의 펀더멘털을 넘어선 성공을 반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타일러 래드키 시티그룹 애널리스트도 팔란티어의 기업 가치가 지나치게 높다고 주장했다. 유중호 KB증권 연구원은 이달 7일 “밸류에이션 관점 팔란티어의 장기 매출·이익 성장 기대치는 주가 상승을 뒷받침하기 역부족이라고 판단하여 ‘운용 비중 축소’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이르면 2년 안에 시총 1조 달러”
팔란티어가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 애널리스트는 팔란티어 시가총액이 이르면 향후 2년 이내 1조 달러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매출은 120억~200억 달러 수준으로 내다봤다. 팔란티어의 올해 매출 전망치가 41억 4200만 달러∼41억 5000만 달러 수준인데 이보다 3~5배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아이브는 팔란티어가 정부 계약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지만 전 세계 AI 붐으로 기업 시장에서의 확장으로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글로벌 고객을 확보하며 매출도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이달 21일(현지시간)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팔란티어는 AI 혁명에서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며 “전통적 영업조직조차 없는 상황이지만 수요는 공급 대비 10배에 달한다. 시총 1조 달러를 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위험도가 높은 종목이라 장애물이 생기면 주가가 크게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계할 필요성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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