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과 주요 면세업체 간의 임대료를 둘러싼 분쟁이 법원의 조정 절차를 통해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오는 28일 열리는 2차 조정 기일 결과에 이목이 쏠린다. 공항 측은 임대료를 낮춰주는 것이 '배임죄'에 해당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반면, 법원은 최근 '경영상의 판단'에 대해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는 판례를 잇따라 내놓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지난 4월 인천지방법원에 임대료 40% 인하를 요구하며 조정을 신청했으나, 양측의 견해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28일 2차 기일에 인국공이 불참한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인천공항은 면세점과의 계약을 통해 얻어야 할 정당한 수익을 포기하는 것은 공사에 재산상 손해를 입히는 행위이므로 업무상 배임죄의 구성 요건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곧 임대료 인하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관련기사
하지만 이러한 인천공항의 논리와 달리, 법조계에서는 기업의 생존을 위한 전략적 결정은 배임이 아니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2013년 서울고등법원은 부도 위기 기업이 사업 유지를 위해 자산을 싼값에 임대해 긴급 자금을 확보한 사안에 대해 "회사의 존립과 직원의 생계를 위한 경영상 결단"으로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2023년 수원지방법원 역시 과다한 금융자문 수수료 지급 건에 대해 "원활한 사업 진행을 위한 합리적 판단"이라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배임죄의 적용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에는 '경영상 판단'에 대해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는 내용의 형법 및 상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으며, 이재명 대통령 역시 배임죄 남용에 대한 제도적 개선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물론, 모든 '경영상 판단'이 배임죄의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회사의 손해가 명백히 예상되는데도 무리한 투자를 강행하거나, 충분한 회수 조치 없이 부실 계열사에 거액의 자금을 지원하는 등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 행위에 대해서는 배임죄를 적용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인천공항 임대료 인하가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는 합리적 결정으로 인정될지 여부가 핵심"이라며, "법원의 최종 결정까지는 다양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