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일본 내 호텔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합작법인을 출범시키며 신동빈 회장이 강조해온 ‘원롯데’ 전략을 본격 가동했다. 경기 침체와 석유화학 업황 악화 등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호텔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사업 확대를 그룹 차원의 협업 모델로 정착시키려는 시도다.
롯데호텔앤리조트와 일본 롯데홀딩스는 9월 2일 도쿄 신주쿠에서 합작법인(JV) ‘롯데호텔스 재팬’ 설립 기념식을 열고 일본 호텔 시장 공략을 공식화했다. 행사에는 정호석 롯데호텔앤리조트 대표이사, 다마쓰카 롯데홀딩스 대표, 후쿠이 롯데호텔스 재팬 대표가 참석해 양국 롯데의 공동 행보를 대외적으로 알렸다.
새 법인은 양사가 일본에서 보유한 호텔 운영 경험과 자산을 토대로 사업 확장을 추진한다. 우선 롯데호텔앤리조트가 운영 중인 ‘롯데아라이리조트’와 롯데홀딩스가 보유한 ‘롯데시티호텔 긴시초’를 공동 관리하며 시너지를 꾀한다. 향후 신규 호텔 개발과 운영 전담 기능을 강화해 일본 내 입지를 넓히고, 장기적으로는 해외 주요 도시로 확산해 글로벌 체인을 확대할 방침이다.
핵심 전략은 ‘에셋 라이트(asset light)’다.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건물을 직접 소유하기보다 프랜차이즈와 위탁운영 방식을 통해 빠르게 체인을 늘리는 구조다. 이는 최근 롯데호텔이 뉴욕에서 개장한 ‘더 뉴요커 호텔 바이 롯데호텔’ 사례와 유사하다. 글로벌 멤버십 프로그램을 강화해 고객 충성도를 높이고, 이를 기반으로 해외 시장에서도 브랜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관련기사
정호석 대표는 “에셋 라이트 전략으로 해외 확장을 가속해 10년 내 아시아 최고의 호텔 운영사로 성장하겠다”고 밝혔다. 새 법인 수장을 맡은 후쿠이 대표도 “지역사회와 함께하며 단순한 숙박을 넘어 삶의 가치를 높이는 호텔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이번 합작의 성패는 빠른 확장과 수익성 관리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초기 투자 부담은 줄일 수 있으나, 브랜드 일관성과 운영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IT 기반 통합 예약·채널 관리 시스템과 글로벌 멤버십을 결합할 경우 일본 내 잠재 수요를 흡수하고 롯데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한층 강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원롯데’는 호텔 사업뿐 아니라 이미 다양한 영역에서 실행돼 왔다. 롯데면세점은 도쿄 긴자에서 점포를 운영하고 있고, 식품 계열사인 롯데웰푸드는 일본 롯데와 브랜드 공동 개발 및 교차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인기 과자 ‘파이노미’를 한국 시장에 ‘파이열매’라는 이름으로 선보였고, 일본은 롯데웰푸드의 젤리류를 다시 들여가는 방식으로 상호 보완적 사업을 전개했다.
바이오 분야에서도 협력이 진행 중이다. 2022년 설립된 롯데바이오로직스는 한국 롯데지주(004990)와 일본 롯데홀딩스가 각각 80%와 20% 지분을 투자한 합작사다. 스타트업 투자 영역에서도 양국 롯데벤처스가 ‘엘캠프 재팬(L-CAMP JAPAN)’을 운영하며 창업 생태계 확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러한 협업은 모두 신동빈 회장이 강조해온 원롯데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그는 지난해 8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그룹 전략회의에서 “한일 롯데가 유기적으로 협력해 글로벌 무대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당부한 바 있다.
결국 이번 일본 호텔 합작법인 출범은 원롯데 전략이 호텔 산업에서 구체화된 첫 사례이자 그룹 차원의 협업 모델을 제도화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JV가 안정적인 성과를 낸다면 공동 소싱, 교차 판매, 현지 생산 등 다른 사업 부문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크다. 일본 호텔시장이 ‘원롯데’ 전략의 시험장이자 글로벌 확장의 거점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