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등 다자주의 무역체계를 무시하고 관세 장벽을 강화하는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 미국 외 국가들의 협력과 대응 의지가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모리스 옵스펠드 미국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3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5 G20 글로벌 금융안정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트럼프 정부 이후 미국식 정책은 달러의 프리미엄과 글로벌 통합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달러의 역할이 단번에 흔들리지는 않지만, 누적된 압력이 일정 임계점을 넘으면 기존 지위 교체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옵스펠드 위원은 UC버클리대 경제학 명예교수이자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으로 이번 컨퍼런스에서 글로벌 통화·금융질서 변화와 미국 달러의 미래를 심층 분석했다. 그는 “각국은 미국발 강압을 피하기 위해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비달러 자산을 확대하려 한다”고 지적하며 미국의 관세 정책이 세계 무역에서 미국 비중을 줄이고 인플레이션 촉진 등으로 1970년대와 유사한 경제적 위기를 유발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특히 미국의 안전자산 프리미엄, 즉 미 국채가 세계적 안전자산으로서의 신뢰가 위협받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국채 이자율 급등, 반복되는 국내외 충격 등은 미국 국채시장의 안정성을 약화시키며, 코로나19 팬데믹과 연방정부 부채한도 논란 등 반복적 충격도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옵스펠드 위원은 “미국의 자본시장, 은행, 규제기관, 법치 등 신뢰 기반이 흔들릴 경우 시장 요구수익률이 상승하고 자금조달이 악화될 수 있다"면서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 성장에도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옵스펠드 위원은 향후 기후변화, 감염병, 핵확산 등 글로벌 위험에 미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다자주의적 협력 재편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또 다른 강연자인 마커스 부르너마이어 미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안전자산으로서 달러와 미국 국채의 역할이 도전받는 가운데 유럽과 아시아 신흥국들이 자체 안전자산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유럽은 국가별 부채를 통합해 시니어·주니어 채권 구조를 만들고 글로벌 차원에서도 여러 국가 부채를 풀(pool)로 묶어 안전자산을 발행할 수 있다”며 “이러한 구조는 위기 시에도 자금이 안전채권으로 이동하도록 해 안정성을 유지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부르너마이어 교수는 안전자산의 핵심 속성으로 ‘거래 가능성’, ‘정보 민감도 낮음’, ‘신뢰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구조가 미국에게 저금리 자금조달과 경기부양, 경제 안정 등 ‘안전자산 특권’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구조가 미국의 안정적 안전자산·기축통화 지위를 만들었다”며 “만약 이런 핵심 안전자산 전략이 없는 국가라면 반드시 자체 안전자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중국은 자본 개방이 미흡해 현실적으로 제한적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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