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이탈리아 그란사소 지하실험실의 ‘다마(DAMA)’ 연구팀은 매년 주기적으로 변하는 미약한 섬광신호를 포착해 이를 우주를 구성하는 미지의 물질, 즉 ‘암흑물질’의 흔적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25년간 다른 물질을 사용한 전 세계 암흑물질 실험에서 같은 신호가 전혀 확인되지 않아 다마 실험은 현대물리학의 대표적인 난제로 남아 있었다. 학계에서는 다마 연구 결과를 두고 ‘암흑물질 발견의 결정적 증거’라는 주장과 ‘실험적 오류에 불과하다’는 논쟁이 이어졌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이 이끄는 ‘코사인(COSINE)-100’ 국제 공동 연구팀은 4일 단독 분석 연구를 통해 이탈리아 다마 실험이 포착한 신호가 암흑물질의 증거가 아님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다마 실험이 포착한 신호가 암흑물질과 무관함을 입증했다’는 내용을 담은 연구 결과를 게재해 25년간 이어진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암흑물질은 우주 전체 질량·에너지의 27%를 차지하지만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존재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면서 은하 내 암흑물질과의 상대속도가 달라지면 충돌 신호가 계절적으로 변해 ‘연간 변조 신호’가 나타날 수 있다. 그간 다마 연구팀은 이를 암흑물질의 증거라 주장해왔다. IBS 연구팀은 해당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2016년 강원도 양양 지하 700m에 코사인-100 실험실을 구축했다. 다마와 동일한 고순도 요오드화나트륨(NaI(Tl)) 결정 검출기를 사용해 실험 조건의 차이를 원천적으로 배제했고 6년 넘게 수집한 데이터를 다마와 동일한 분석 방식으로 정밀 검토했다. 그 결과 해당 신호가 암흑물질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높은 신뢰도로 확인했다.
또한 연구팀은 스페인의 아나이스(ANAIS)-112 실험팀과 공동 분석을 진행했고 두 독립 실험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합산해 검증한 결과 다마 신호가 재현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해당 연구는 과학적 발견에 요구되는 핵심 조건 중 하나인 ‘독립적 교차 검증’의 모범 사례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현재 정선에 새로 구축된 지하 1000m 깊이의 실험실 예미랩으로 자리를 옮겨 성능을 한층 높인 ‘코사인(COSINE)-100U’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김영덕 IBS 지하실험연구단장은 “이번 연구는 한국이 암흑물질 연구의 핵심 주체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성과”라며 “향후 차세대 실험을 통해 새로운 암흑물질 후보를 탐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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