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의 프리마켓(오전 8시~8시 50분)보다 1시간 더 빠른 ‘7시 프리마켓’ 운영을 검토한다. ATS가 출범 6개월 만에 점유율을 높이며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자 거래시간 연장을 추진 중인 거래소가 차별화된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ATS 전체 거래량 중 프리마켓 비중이 20%에 달한다는 점에서 ‘출근길 투자자’와 ‘수익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4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거래소는 오전 7~8시까지 운영하는 프리마켓 도입을 추진 중이며 금융 당국에 관련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거래소는 정규 시장(오전 9시~오후 3시 30분)과 시간 외 시장(오전 8~9시, 오후 3시 40분~6시)을 운영하고 있다.
거래소가 오전 7시부터 1시간 동안 프리마켓을 도입하는 방안이 확정되면, 투자자들은 출근길 주식거래 창구가 이원화돼 선택권이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ATS 프리마켓 운영시간은 오전 8시~8시 50분으로 투자자는 오전 7시부터 8시 50분까지 주식거래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해외 투자자 유입 확대도 기대할 수 있다. 거래소는 프리마켓 이후 약 1시간 뒤부터 정규장(오전 9시~오후 3시 30분)과 애프터마켓(오후 3시 40분~8시)을 운영할 것으로 관측된다.
거래시간 변경은 거래소 업무 규정 개정 사안으로 별도의 법 개정은 필요 없다. 다만 거래시간 확대는 금융위원회 승인 사항인 만큼 협의가 필요하다. 오전 7시 프리마켓이 확정되면 ATS도 1시간 앞당겨 7시 장 개시로 변경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미국·영국 등 글로벌 주요 증시에서는 사실상 24시간 거래시간 체제가 보편화되는 추세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NASDAQ)은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거래시간을 24시간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단, 가상자산과 달리 주말에는 장이 열리지 않는 주 5일이다.
한국거래소가 ‘7시 프리마켓’ 도입을 검토하는 배경은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가 빠르게 성장한 데 따른 대응 성격이 짙다. 넥스트레이드가 출범 6개월 만에 ‘15% 룰(한국거래소 거래량 대비 15% 이내)’을 위협할 정도로 시장점유율을 키운 요인에는 프리마켓 거래의 급성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내년부터 나스닥 등 미국 거래소가 24시간 돌아가는 만큼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밝힌 대로 전 세계 거래소와의 경쟁에 본격 나서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다만 일부 직원의 반발과 시스템 개선 등을 감안하면 시행은 이르면 내년 초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넥스트레이드가 출범한 올 3월 프리마켓(오전 8시~8시 50분) 거래량 비중은 전체의 8%에 불과했지만 출근길에 주식거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빠르게 확산되며 약 800종목을 거래함에도 불구하고 4월 17%, 5월 20%, 6월 21%로 뛰어올랐다.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2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간밤의 미국 증시 영향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 속에 새로운 투자 문화가 빠르게 자리 잡은 모습이다.
이 같은 변화는 거래소에도 자극이 돼 정규장 시간 연장 논의에 불을 지폈다. 금융 당국과 거래소는 그동안 오전 9시~오후 3시 30분인 정규장 거래시간을 오전 8시~오후 8시로 늘리는 방안을 두고 논의해왔다. 단순히 정규장을 한 시간 앞당기는 안과 ATS처럼 프리마켓을 신설하는 안이 주요하게 거론됐다.
거래소가 7시 프리마켓 개장을 검토하게 된 배경에는 정규장 개편을 둘러싼 업계의 이견과 정규장 개편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거래소는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정규장 조기 개장(오전 8시) △프리·애프터마켓 신설(호가 이전) △프리·애프터마켓 신설(호가 미이전) 등 세 가지 안을 놓고 설문을 실시했다. 대형 증권사들은 정규장 조기 개장을 선호했지만 중소형사들은 정보기술(IT) 인프라 비용이 덜 드는 프리마켓 확대를 지지했다. 업계 의견이 갈리고 정규장 시스템 개편에 최소 1년 이상이 필요한 점을 고려해 프리마켓 개장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ATS의 수수료가 30~40%가량 저렴한 만큼 같은 8~9시 프리마켓에서는 경쟁이 쉽지 않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 역시 수수료 인하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ATS와 똑같이 맞추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금융투자 업계 고위 관계자는 “실제로 거래소가 7시 프리마켓을 도입할 경우 7~8시 거래가 전체 프리마켓의 70~80%를 차지하고 넥스트레이드는 20~30%를 가져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금융 당국도 프리마켓 개장에 힘을 실었다. 금융위원회는 3일 정례 회의 후 “한국거래소가 출근 시간대 프리마켓 도입 등을 포함한 거래시간 연장 방안을 업계·노조 등과 본격 협의할 예정”이라며 “정규장을 조기 개장하는 것과 달리 정규장 전 프리마켓을 별도로 개설할 경우 노무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정규장 조기 개장은 증권사의 반대매매 실무 부담이 수반되지만 프리마켓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그럼에도 실제 시행까지는 난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사와 현장 직원들의 근무 부담 또한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정규장(오전 9시) 시작 전 8시에 맞춰 출근하는데 7시 개장이 도입되면 새벽 근무가 불가피하다”며 “기준가 산정 등 세부 운영 방식도 논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용·수탁 업계의 우려 역시 크다. 프리마켓을 7시에 열면 시스템 점검, 주문·체결 확인, 펀드 기준가 준비 등을 위해 최소 새벽 5~6시 출근이 필요하다. 대형 자산운용사 대표는 “7시 개장이 도입되면 운용사와 수탁은행 인력이 새벽 근무에 투입될 수밖에 없다”며 “근로기준법상 오전 6시 이전 근무와 연장근무는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해야 해 인건비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