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르게 오르던 원·달러 환율이 14일 상승세를 멈췄다. 외환시장 핵심 주체인 국민연금 및 주요 수출기업과 환율 대응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당국의 발표가 영향을 미쳤다. 다만 향후 환율 흐름을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거주자의 해외투자가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보다 빠르게 늘어나면서 원화 약세 압력이 상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장기화하면 외환 당국의 간헐적 개입만으로는 환율 방어가 어렵다고 경고한다.
이날 환율 하락의 결정적 원인은 외환 당국의 구두 개입이었다. 미국 뉴욕증시 급락에 따른 위험 회피 심리에 장 초반 전날보다 7원 넘게 오른 1474.9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 흐름은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시장 개입성 발언이 나오자 급변했다. 그가 “국민연금·수출기업 등과 긴밀히 논의해 환율 안정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자 환율은 곧바로 1450원대 중반까지 내려가며 장 초반 과열됐던 상승 심리가 빠르게 꺾였다. 구두 개입성 발언 이후 실개입 물량도 일부 나오며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이후 오후 2시가 넘어서 1452원까지 저점을 낮췄는데 시장에서는 수출기업과 국민연금의 달러 매도가 반영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밖에 이날 발표된 한미 팩트시트에 ‘외환시장 안정’ 항목이 별도로 포함된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당국자의 명확한 판단이 제시되면 시장 심리가 빠르게 안정된다”며 “필요하다면 실개입을 병행해 쏠림을 되돌려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당국의 개입이라는 강력한 조치가 나온 것에 반해 환율 하락 폭은 제한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날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대규모 순매도에 나서며 원화 강세 요인이 상당 부분 상쇄됐기 때문이다. 외국인투자가들은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2조 3473원가량 순매도했다.
시장에서는 외환 당국의 개입으로 원화 가치 폭락이라는 급한 불을 껐지만 환율이 쉽사리 안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이유로 엔저 흐름이 꼽힌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의 확장 재정 방침에 엔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데 이에 동조해 원화도 약세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가 저금리와 엔저를 유도했던 ‘아베노믹스’를 펼칠 초기 원화도 이에 동조돼 약세 흐름이 이어졌던 경험이 시장 심리에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국제 통화 흐름과 비교해도 원화 약세 기조가 뚜렷하다. 이달 1일부터 14일까지 원화는 달러 대비 2% 가까이 절하 압력을 보였는데 같은 기간 대만달러(-1.2%) 등 주요 수출 경쟁국 통화보다 변동 폭이 컸다.
국내 자금의 해외 유출이 빠르게 진행되는 점도 원화 약세의 고착화 우려를 키우고 있다. 미국의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엔화 약세 압력이 잦아들어도 환율이 쉽게 내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9월 국내 거주자의 해외 증권 순투자는 998억 달러로, 같은 기간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 유입(296억 달러)의 3배가 넘는다. 이에 시장에서는 이처럼 편향된 자금 흐름을 완화하기 위해 해외투자의 국내 환류를 촉진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환율 방어 전략 사이에서 난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점도 변수다. 내년부터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이 예정돼 있어 연금의 해외투자 비중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인데 정부는 연기금을 국내 증시 활성화와 환율 안정의 ‘수급 조절 카드’로 활용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환헤지를 둘러싼 외환 당국과 국민연금 간 이견이 노출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올해 이미 전략적 환헤지 발동 요건을 한 차례 사용한 데다 운용 성과와 보상 체계 등을 고려하면 연내 환헤지 확대를 적극 추진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환헤지로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연금 내부에서는 성과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환헤지를 확대할 경우 필요한 달러는 한은과의 연간 한도 650억 달러 규모 통화스와프를 통해 조달할 수 있으며 현재 한도는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은 관계자는 “국민연금과의 통화스와프와 관련해 여러 방안을 두고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khr@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