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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관련 법이 과학연구엔 극약인가?

요즘 미국의 생물학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우려의 목소리들을 내고 있다. 9·11 테러 후 생물학적 무기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는 대상들을 적절히 처리하지 않는 경우에 그것이 처벌 대상이 되는 여러 관련 법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법집행에서 미연방정부는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우편물을 통한 탄저균 살포의 공포가 절정에 달했던 2001년에 의회를 통과한 미합중국 반테러법 제 175조는 약 60가지의 생물물질(select agent)를 저장하거나 운반하는 사람 모두가 적용 대상이다. 2002년의 ‘공중 보건 안전 및 반생물 테러 태세와 대응에 관한 법’은 더 높은 벌금과 더 긴 형기를 규정하고 있다.

생물학 무기와 관련이 있는 어느 것이나 미국의 일반 국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알 카에다가 미국의 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시대에 통제 대상 물질들을 부주의하게 다룰 경우 정부가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일반국민들의 생각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백신, 치료법, 해독제를 연구하는 의학 연구자들에게 오랜 기간 관심 대상이었던 광범위한 미생물과 독극물들이 이 생물학적 물질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생물물질 가운데에는 에볼라, 황열, 마버그 바이러스, 탄저균 및 브루셀라균, 음식을 통하여 퍼지는 아플라톡신과 보툴리누스균 독, 리신, 피마자 독 (이것을 북 런던의 한 아파트에서 제조하던 사람들이 지난 1월 체포되었다) 등등이 있다. 모두 사람과 동물에게 질병을 야기하는 것들이다. 이 연구를 하기 위해선 이와 같은 독극성 물질들을 다량 보유할 수밖에 없다. 미국 전역의 천 여 개소의 과학 및 의학 실험실에서 이들의 샘플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많은 과학자들은 단순한 부주의만으로 범법자가 될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 강력한 법 적용에 따른 부작용으로 활용가능한 물질들의 양이 줄어들게 되며, 이같은 상황에서는 미국 전역의 연구 활동이 위축될 게 뻔하다.

4만2천명의 회원이 있는 미국 생물학회장 로널드 애틀라스(Ronald Atlas)는 “지금까지 우리는 연구 중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30일 이내에 시정하라는 규정에 익숙해져 왔는데 이제는 잘못하면 감옥에 가서 몇 년을 보내야 할 판”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물론 우리가 사는 세계가 과거보다 더 위험한 곳이 된 것은 사실이다. 법은 연구를 방해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으며, ‘예방이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진짜 연구 또는 기타의 평화적 목적’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면죄부를 주고 있다. 따라서 엄격한 법집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과장된 것이라고 일축하기 쉬우나 반 테러법에 첫 케이스로 걸려든 과학연구자가 겪은 상황을 생각해 보면 얘기가 다르다. 2001년 11월 FBI 요원들은 코네티컷 대학교 병리학 실험실을 방문하여 대학원생 탐 포럴의 냉동실에서 ‘탄저균’이라고 표시된 두 개의 병을 발견하였다. 탄저균이 묻은 조직 샘플은 몇 년 전 자연 발생한 탄저병으로 죽은 소의 시체에서 얻은 것이었다. 포럴은 다른 여러 병리학 표본과 함께 이것을 보관했다.

한 교수가 그에게 고장 난 냉동고 안 내용물을 치우라고 시킨 다음이었다. 포럴은 그 교수가 자기에게 냉동고의 내용물을 치우라고 시킨 것을 ‘필요한 것은 잘 두고 나머지는 없애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 교수는 FBI에게 포럴 학생이 그 내용물들을 없애버린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을 했다. 누군가가 오염된 조직과 혈액으로부터 탄저균을 배양했을 수는 있으나 포럴이 냉동고에 보관한 미가공 표본들은 인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포럴의 지도 교수들은 포럴이 이 표본들을 자기의 참고용 수집물들과 함께 둔 것은 이 연구 분야에서는 일상적인 행동이었음을 수사관들에게 설득하려고 했다. “대학원 학생들이라면 으레 그런 식으로 훈련을 받습니다. 과거에 저를 가르치던 지도 교수님은 ‘복제 해놓은 것이 없는 샘플은 어느 것도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지요.” 포럴이 웨스트 나일(West Nile) 바이러스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코네티컷 대학교 농과대학장 커클린 커(Kirklyn Kerr) 교수의 말이다.

지난 7월, 연방 검사들은 포럴을 반 테러법에 의하여 최고 10년형에 벌금 25만 달러에 처할 수 있는 범죄로서 ‘생물물질 표본의 무책임한 보관’ 혐의로 정식 기소하였다. “이 학생은 그와 같은 것을 저장하도록 인가를 받지 않았습니다. 탄저균을 가지고 어떠한 연구도 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런 연구를 할 계획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 기소의 배경에 관한 설명으로 미연방 검찰 대변인 델시 티볼트(Delcie Thibault)가 한 말이다.

검찰 측은 조사과정에서 포럴이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점을 참작하여, 가석방 담당관에 대한 정기적 신고, 일정 기간의 지역 봉사, 그의 ROTC 지원서에 ‘불법적 행동’에 관한 자세한 기술 등을 포함한 조건을 그에게 제시하였다. 군의관이 되려는 생각을 오랜 동안 품어온 장교 지망자의 지원서에 그와 같은 사항을 기재하라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저는 검사들의 그와 같은 제안을 받아들이는 도리 밖에 없었습니다. 변호사를 쓰자면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지금 저는 의과대학에 입학 신청 중이거든요.” 이와 같이 말하며 포럴은 자기가 마치 덫에 걸린 기분이라고 했다.
과연 이런 상황이 법이 의도하던 바일까?

“이제 이 사건을 들은 과학 연구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멈칫하게 되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 미생물학자 존 콜리어(John Collier) 교수의 말이다. 탄저균 연구의 유수한 연구자인 콜리어 교수는 포럴의 사건을 접하고는 자기가 유일하게 보관 중이던 박테리아 균주(strain)를 없애 버렸다.

연방정부가 새로 취하는 독극물 취급에 관한 조치들에 저촉되는 사람들은 비단 순진한 학생들 만이 아니다. 지난 1월 텍사스 공대 보건과학센터의 저명한 전염병 학자 토마스 버틀러(Thomas Butler) 교수는 전염병균 몇 병을 분실한 것으로 허위 신고한 혐의로 수갑을 찼다. <사이언스>지 등에 따르면 버틀러 교수는 새 규정이 요하는 바에 따라 관련 세균을 없애버렸음을 문서화 해야 하는 절차를 잊은 후 그 사실을 적당히 넘어가려고 허위신고를 했음을 시인했다는 것이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버틀러 교수는 여권을 포기해야 했으며, 생물학 연구 물질들로부터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동의를 했고 재판을 받을 때까지 전자 감시 장치를 몸에 부착하고 다니라는 명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버틀러 교수가 스스로 자초한 문제다. 그러나 같은 대학교의 한 동료 교수는 이번 문제를 “사소한 문제를 당국이 마치 전시라도 되는 듯 지나치게 굴고 있다”고 평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 당국의 책임 추궁을 의식한 대학교들은 과학 교수들에게 현재 사용하지 않는 모든 미생물 균주들을 즉시 모두 없애버리도록 하고 있다. 연구 학자들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사례 가운데 하나는 아이오와 주립대학교가 사람에게 치명적인 우편물을 통한 감염과 관련된 ‘에임즈 테스트 아종(Ames strain)’등의 탄저균 보관분을 모두 앞뒤 재지 않고 버린 일이다.

다른 연구 기관들이 이 아종의 분리체들을 보유하고 있기는 하나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세균의 세계에서는 어느 것도 똑 같은 것이 없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유전자 변종은 금방금방 없어지므로 대학원생들로부터 정교수에 이르기까지 연구자들은 계속하여 여러 다른 소스들로부터, 그리고 해마다, 이들을 모아두려 한다. 연구자들은 분리체들 간의 미묘한 유전자적 변동을 연구하여 세균의 약점, 서로 다른 변종들의 항생물질 내성, 독성의 변화 같은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물학 무기의 소스를 추적하여 찾아내려면 가능한 한 광범위한 분리체들의 유전학적 ‘지문’들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전체 과학계가 보다 철저한 국가 안보를 위하여 단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과학자들 가운데는 새로운 법을 지나치게 적용하다 보면 생물학적 테러의 위협 및 질병에 대항하는 노력에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나친 규정 적용으로 미국이 어쩌면 제 발에 대고 총을 쏘는 결과가 생기기지 않을까 심히 우려됩니다.” 국립과학원 (NAS)의 한 위원회의 위원인 콜리어 교수의 말이다.

최근에 하원의 과학 논의 및 테러 관련 위원회에 출석한 애틀라스 회장은 생명을 구하는 치료법에 발전이 이루어지려면 참조용의 배양균을 가지고 연구에 임해야 한다는 주장했다. “자연발생적 전염병의 위협이 생물학 테러보다 더 심각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OSTP)은 다시 구할 수 없는 표본들을 함부로 버리는 최근의 관행에 경악해 미생물학자들에 대해 표본들을 버리지 말고 메릴랜드 에지우드의 연방정부 비군사용 화학물질 보관소(CDF)로 보내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러나, 에지우드의 이 시설은 표본 은행이 아니다. 정부 시설로 일단 보낸 생물학 표본들은 되돌려 받을 수 없다. OSTP의 생명과학 부국장 레이첼 레빈슨(Rachel Levinson)은 연방정부가 자금 지원을 하는 연구 프로젝트들에 대해서는 에지우드의 보관소를 개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덧붙인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이들 표본들은 법의학용의 참조 자료로 보관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개인들이 생물학적 물질(agent)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접근할 수 없도록 금지한 제한 규정도 까다로운 문제 중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이 조항들이 군대의 부적격자나 테러 행위를 방조하는 것으로 알려진 국가 출신의 사람에게 특수 약제 접근을 금하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애틀라스 교수는 이란, 쿠바 같은 나라를 빠져 나온 훌륭한 과학자들의 경우에는 예외를 두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한다. 이에 따라, 미국 미생물학회는 의회에 로비 활동을 펼쳐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경우’ 법무장관이 개인 별로 예외를 적용하도록 법을 수정하도록 요구했다. 또한, 예를 들어, 군대에서 불명예 제대한 사람에게 생물학적 물질에 접근을 금지하는 조항이 성 생활문제로 불명예 제대한 사람에게도 적용된다는 점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골치 아픈 문제이다.

“연구를 수행하는 모든 대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다양성의 유지입니다. 성적 취향도 다양성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차별하여서는 안 되며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으나, 이 법은 우리에게 사람들을 차별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커 교수의 항변이다.

이 법은 또한 정신치료를 받았던 사람들에게도 이 생물학적 물질에 대한 접근을 완전히 금지시키고 있다. 이 법대로라면 우울증이나 걸식증과 같은 식이장애로 정신치료 클리닉에서 통원치료나 입원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도 포함된다. “국가의 통제를 받는 물질을 불법적으로 사용한 전례가 있는 사람”까지 포함시키라는 조항은 더욱 어불성설이다.

커 교수는 “우리는 생물학적 물질들을 조심스럽고 적절하게 취급하면서도 대학 내에서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저는 책임자로서 우리의 기술지원 인력들과 대학원 학생들, 포스닥과정의 연구원들이 연구 과정에서 이 법에 저촉되는 상황이 발생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루이즈빌 대학교의 애틀라스(Atlas) 대학원장도 커 교수와 비슷한 의견이다. “이 법은 말하자면 그 생물물질로 연구를 진행하는 사람이라면 법적으로 제한된 사람들이 이 물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할 의무가 있다는 겁니다. 이를 어기면 철창 신세를 져야 하고요. 접근하도록 허용한 사람들은 전부 법에 저촉됩니다. 하다 못해 실험실 문을 열어준 수위 아저씨까지 말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요한 연구들이 신속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 생물학 안전협회장 바바라 존슨(Barbara Johnson)은 그와 같은 우려를 일축한다. 그녀는 “과학 연구 분야 종사자들에게 감옥에 갈 일이 생기거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실험실에서 직장 안전에 대한 산업안전보건청(OSHA)의 규정을 위반한 사례에 대해 꼬집었다. 존슨 생물학 안전협회장은 이와 같은 새 규정들 때문에 초기엔 생물물질에 대한 연구가 일부 영향을 받기도 하겠지만 연방정부의 자금지원 물꼬가 터지면 상황은 금방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물학적 테러에 관한 정부 지원이 시작되면 이 신규 법안을 준수하는 연구소들은 연구 프로그램들을 상당히 많이 늘려갈 수 있으며 그렇지 않던 연구소들도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시작할 것입니다.”

존슨 회장의 말에 일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생물학 테러 관련 연구의 황금시대가 열리더라도 어쨌든 이 새 법안에 저촉되어 고생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대학원생 포럴군은 FBI와 미연방검찰청에 붙잡혀가 시달린 일을 ‘카프카적’인 경험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기 연구실의 냉동장치에서 발견된 두 종류의 병리학 표본들에 관하여 “그 때 저한테 그저 간단히 그것들을 없애버리라고 말했더라면 전 아무 고생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도 저는 교수님이 왜 그런 지시를 하지 않아 제가 이 고생을 해야 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라고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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