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과 언론사 사주의 은밀한 대화가 담긴 ‘X파일’사건 이후 불거져 나온 도·감청 파문이, 국가정보원의 CDMA폰 도·감청 사실 고백이후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급기야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 수색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까지 진행되면서, 도·감청 문제가 우리나라 전역에 뜨거운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휴대폰간 통화내용 도·감청 가능성 여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정보통신부는 CDMA 도·감청 가능성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고 최근 국정원의 CDMA 휴대폰 도·감청 사실 시인이후에도 그 입장에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통부는 그간 도·감청을 묶어 혼용해 오던 용어에 대해, 도청과 감청을 분명히 분리하면서 합법적 감청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한편 불법적 도청은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통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불법 감청, 즉 도청에 대해서는 “국가기관이나 이동통신기지국 장비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대기업이 대규모 자본을 투입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으나, 이는 행위의 은밀성으로 볼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통부의 이같은 입장은 CDMA 휴대폰간 도·감청 가능성에 대한 태도가 다소 변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실적 불가능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CDMA 도·감청 가능성 여부를 논하기 전에 도청과 감청의 의미를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테러와 범죄에 대비해 “모든 통신은 감청이 가능해야 한다”는 게 전 세계 통신관련 정부부처의 공통된 입장이며, 따라서 CDMA에 대한 감청 역시 가능해야한다는 게 원칙이다.
통상 감청은 법원의 영장을 받아 합법적으로 통화 내용을 듣는 행위를 말하며, 도청은 이같은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단으로 행한다는 점이 다르다.
국가기관인 국정원이라도 영장 없이 타인의 통화내용이나 대화내용을 엿듣는다면 ‘불법 감청’으로 이는 도청이나 마찬가지다. 최근 국정원이 CDMA 휴대폰간 통화 내용을 몰래 들은 행위 역시 명백한 ‘도청’인 셈이다.
감청설비 설치하면 CDMA 감청가능
우리나라는 유선구간의 경우, 교환기에 감청 설비가 설치돼 합법적으로 감청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따라서 지금도 범죄 수사나 테러에 대비해 법원의 영장을 받으면 유선전화의 감청이 가능하다.
휴대폰(CDMA포함)에서 유선전화로 거는 전화 역시 유선 착신자쪽 교환기에 감청 설비를 설치하면 감청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CDMA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나 CDMA휴대폰간 통화에 대한 합법적 감청은 설비가 갖춰져 있지 않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동통신망의 기지국 이동교환기에 감청 설비를 설치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CDMA망을 구축하면서 감청 설비에 대한 표준을 구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CDMA 이동통신망에도 감청설비를 구현하는 국제표준이 있으나, 우리나라는 이를 구현하지 않은 것이다.
최근 논의가 되고 있는 CDMA망의 감청설비 설치 의무화 법안은 CDMA망에 감청설비 표준을 구현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CDMA 기지국 이동교환기단의 합법적 감청은 교환기내에 별도의 소프트웨어나 카드를 장착, 특정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 내용을 녹음 서버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일반 사설도청업체들은 이곳에 들어갈 수도, 접속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설도청업체가 CDMA 휴대폰 도청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는 게 정통부의 주장이다.
진대제 장관은 이와 관련, “국가기관이나 기지국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업체라면, 도청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이는 현실적(법, 기술, 투자비, 비공개)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시스템 업그레이드때 가능
정통부는 감청설비 설치 의무화 법안을 마련해 기지국 이동교환기에 감청 설비를 설치한다면 합법적 감청은 가능하지만, 여전히 CDMA 휴대폰 도청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통부는 전국 200여개 이동전화 교환기를 감청이 가능하도록 시스템 소프트웨어 등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시스템을 바꾸면 감청이 가능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기지국 이동 교환기란 기지국 등에서 들어오는 이동전화 호(呼)를 다른 이동망이나 공중 전화망 등에 분배·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국에 총 242개가 있다.
이동통신사 별로는 SK텔레콤이 147개, KTF가 68개, LG텔레콤이 27개 가량이 있다. 이들 교환기는 교환국에서 관리하고 있다.
정통부가 언급한 이동전화 교환기에 설치되는 감청장비는 감청대상자의 통화내용을 녹음할 수 있는 교환기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 녹음서버, 녹음장비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같은 감청장비가 설치되면 감청 대상자 선정→특정 교환기를 거치도록 사전 설정→통화시 해당 교환기에서 녹음→감청 가능 등의 순서로 감청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감청 대상자가 정해지면 감청 대상자의 휴대폰 통화가 이뤄지기 전에 특정 교환기를 거치도록 사전에 경로를 설정하고, 통화가 이뤄지면 해당 교환기에서 통화내용을 녹음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는 감청 대상자의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기능(BSD)과 통화 상대방간의 데이터를 연결시켜주는 기능(WSD) 등이 이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이전에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할 경우 어느 이동전화 교환기를 거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도·감청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242개 이동전화 교환기에 감청장비가 설치되면, 사전에 감청 대상자가 거칠 교환기를 미리 정해, 이 교환기에서 녹음을 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쉽게 감청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은 안전한가
진대제 정통부장관은 일반 국민들의 도청공포에 대해 “일반 국민들은 절대 안전하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국가 기관의 불법 감청에도 불구하고, CDMA의 `도청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종전 입장이 변화가 없음을 내비친 대목이다.
정통부는 하지만,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최근 `이동전화 안전성 제고 대책`을 발표했다.
정통부는 우선 현행 CDMA시스템이 사용하는 암호방식을 개선키로 했다. 새로운 암호는 복제가 불가능한 암호키를 사용하는 것으로, 빠르면 2006년 말에는 도입할 방침이다.
또 복제단말기에 의한 제한적인 엿듣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착신 단말기가 정상적인 단말기인지 확인하는 인증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불법 복제된 단말기를 탐지하는 시스템의 기능을 보강하고 적발된 불법복제 단말기 사용자를 수사기관에 의무적으로 고발하도록 하는 한편 불법복제 단말기 유통관련자를 고발하는 경우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아울러 시중에서 유통되는 도청장비를 근절시키기 위해 경찰청에 전담조직을 신설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해 추진하고 휴대용 도청탐지장비를 저가에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합법적 감청 위장한 도청 방치책 마련해야
정통부 발표에 따르면 민간 사설도청업체의 CDMA 불법 도청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감청설비 설치가 합법화되고 CDMA에 대한 합법적 감청이 진행될 경우, 문제는 국가기관의 불법 감청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그동안 국가기관에 의한 도청은 비일비재했고, 이는 대부분 합법적 감청을 위장한 것이었다. 사후 영장발부나, 영장발부시 명단 끼워 넣기 등의 방식이 대표적이다.
범죄와 테러 등에 대비해 합법적 감청은 필요하지만, 이런 합법적 감청을 진행하는데 있어 특정인의 도청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합리적인 과정과 법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임윤규디지털타임스 기자 y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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