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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명당, 그리고 과학

제가 몸담고 있는 신문사의 선배 한 분이 정년퇴직 하셨습니다. 35년간 근무했으니 짧은 세월은 아니죠. 그런데 그분은 짧고 빠른 시간의 속성을 거론하며 아쉬움을 토로하더군요.

사실 시간이라는 게 참 상대적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시간이란 어느 곳에서나 균일한 양, 균일한 속도로 흘러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물리적인 시간의 개념일 뿐이죠.

사람에게 의미 있는 것은 아마도 마음의 시간일 것입니다. 보통 사람의 경우 어린 시절은 항시 길게 느껴집니다. 혼란스럽거나 위험한 시기, 또는 고통스러운 시기 역시 길게 느껴지기 마련이죠. 반면 정년퇴직을 하신 그 선배는 아직도 남아있는 기자(記者)에의 열정,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걱정이 뒤섞여 지나온 시간이 무척이나 짧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 분은 시골에 있는 땅에 나무를 심겠다고 하더군요. 땅이 크지 않고 농사를 짓기에도 적합하지 않지만 근처에 강이 있고 경치 역시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펜션사업이 어떠냐고 되물었습니다. 그 분은 잠시 생각을 하는 표정으로 “그래! 악산(惡山), 박토(薄土)라도 잘만 이용하면 명당이 되는 거지”라고 하더군요.

그때 문득 명당이란 무엇이고, 실재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봤을 문제죠. 사실 풍수지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조차 갈수록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LA 다저스의 성적 부진은 풍수지리상 구장의 위치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물론 각종 스캔들에 시달리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풍수지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백악관 사무실을 개조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풍수지리, 즉 풍수가 펭슈이(fengshui)라고 불립니다. 풍수에 맞게 사무실을 꾸며 놓았다(I had my office fengshui)라는 말은 이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부동산 등 여러 분야에서 풍수지리가 유행을 타고 있습니다. 영국 항공사인 버진 애틀랜틱은 길일(吉日)을 정해 항공노선의 취항 날짜를 정하는 등 풍수지리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풍수지리를 과학이라고 해도 될까요.



오늘날 정의하는 과학의 영영은 다음의 3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우선 재현과 측정이 가능해야 하고, 유형의 증거를 가져야 하며, 통일된 학문체제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풍수지리는 이 같은 요건 중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풍수지리가 주거와 관련된 일상생활, 장례의식 등에 일정 지침을 주는 정도에서 벗어나 선악과 길흉이라는 종교적 믿음 체계의 일부가 된 것을 들어 풍수지리는 과학유산이라는 명제에 강하게 반발합니다.

반면 중국 과학사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네이선 시빈은 “동아시아의 과학은 현대의 과학과 달리 정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동아시아의 전통사회에서는 자연을 연구해온 오랜 전통이 곧 과학이라는 거죠. 실제 풍수지리는 땅이라는 자연 대상을 탐구해 고도의 이론체계를 만들어 냈으며, 일정한 교육시스템을 통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길러냈습니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저는 이 같은 영역분류가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삶에 도움이 되는 풍수지리, 즉 실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의 선배가 말했듯이 어떤 환경의 땅이라도 적합한 용도로 사용하면 그게 바로 명당인 셈이죠.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땅은 명당으로서의 잠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현대 풍수지리의 명제가 돼야 할 것 같습니다.

정구영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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